한국일보

Hats off

2017-09-09 (토) 전미리/아나운서·섬머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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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인간의 승부는 무덤에서 난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인생에는 죽기 전까지 기회가 있고, 불행이나 행운은 예고 없이 오는 것이기에 마지막 날에 그 사람을 평가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최근에 나는 인생을 훌륭하게 살았다고 믿어지는 한 사람의 추모식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빈곤한 한국의 한 가정에 등불이 되었던 은혜의 사람 토마스씨, 그리고 그가 남긴 업적에 경의를 표하며 인생의 보람된 가치를 다시 찾아 볼 수 있었다.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일생을 나라 일에 몸 바쳐 일한 공로자 토마스 준장. 그의 이름은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영원히 반짝일 것이다. 토마스 씨는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로 아직 잿더미가 식지도 않은 나라 한국에,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4군 정보기관의 일원으로 파견된 엘리트였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위해 일하던 중 한국여성과 결혼하고 20여년을 한국 서울에서 근무 했다. 당시의 국제결혼은 사회의 눈길이 차가울 때이지만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친정 식구를 살릴 수도 있다는 욕망이 결혼할 용기를 보태 주었다고 부인 Annette는 그때를 회상했다.

결혼과 함께 어머니와 동생들을 서울로 이사시키고 그녀는 집안의 생활비와 학비를 모두 담당했다. 참으로 훌륭한 딸이다. 가난했던 한 가정을 이렇게 살린 당시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아네트씨와 토마스씨에게 ‘Hats off’ 하지 않을 수 없는 감동이 나의 가슴을 흔들었다 . 멀고 먼 동방의 나라 한국 땅에 와서 방직 공장의 한 여직공을 사랑하게 되고 품에 안은 토마스씨, 그의 소박한 인간미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토마스 씨에게도 한때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시절 구두 밑창이 벌어져서 얼음과 눈이 발을 적시는 신을 신고 학교를 다니며 맨하탄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는 학벌이나 직업을 떠나 순수한 인간애로 주위 사람들을 품어 주었다. 그가 한국에 오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휴머니즘과 그의 따뜻한 리더쉽이 아니었는가 생각해 본다.

어느 날 서울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한국 청년 몇명이 그를 쳐다보며 미국ㅇ의 ㅇㅇ들 어쩌구 저쩌구 야유하는 것을 들었을 때 빙그레 웃으며 한국말로 “그러지 마세요”라고 부드럽게 응수하여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가 한국을 떠나 워싱턴의 중앙본부 돌아올 때 당시 한국 치안국장은 한국안보에 기여한 토마스씨에게 공로패를 증정했다. 추모식이 끝날 무렵 맨하탄 아이리쉬 성당 안에 가득히 울려 퍼지는 영국민요 대니 보이 노래 소리에서 마치 그의 조상의 나라 아일랜드로 찾아가는 토마스씨의 영원한 발걸음을 보는 것 같아서 나의 눈시울은 젖고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안보를 위해 쓰임받은 귀한 사람, 그의 생애를 조명하면서 그의 세 자녀와 미망인 아네트, 그리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힌 또 하나의 별, 토마스 준장에게 나는 다시 한 번 Hats off 하면서 지상 최고의 박수를 보낸다.

<전미리/아나운서·섬머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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