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컹크와 래쿤, 제군들에게 고함!

2017-09-02 (토) 소예리/교무.릿지필드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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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 한인마트에서 고추, 호박, 아욱 등의 모종을 구입하여 교당 뒤뜰 자투리땅에 심고 남은 것들은 화분에 심었다. 아침저녁으로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지극 정성을 다하며 자라나는 재미를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 보면 호박에 꽃이 피고 어느 날은 열매가 맺혀 예쁘게 커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포동포동 잘 자라던 근대 잎이 조금씩 형체를 감춰가고 있었다. 짐승이 밤새 입을 댄 것이 확실했다. 그러러니 하며 며칠을 지났는데 그 사이 결국 근대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다음 목표물은 호박잎이 되었다. 마침 예쁘게 호박 3개가 자라고 있었는데 호박잎을 뿌리 쪽부터 야무지게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짐승이 계피 향을 싫어한다는 소리가 있어 나는 호박잎 곳곳에 계피가루를 뿌려두고“ 내일은 안 먹겠지”라는 기대감으로 다음날을 맞이했다. 웬 걸. 다음날도 그들은 호박잎에 입을 대고 있었다. 대체 어떤 녀석이? 속상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가끔 스컹크의 지독한 냄새가 주변에서 나는 것으로 보아 막연히 그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자라고 있던 찰옥수수가 밑 둥부터 턱 꺾여있는 참상을 보게 되었다. 전에 없던 일인데 싶어서 다시 놀라게 되었다. 그러다 전에 못 보던 제법 큰 토끼가 잔디밭에 서성이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아 이제 토끼도 여기까지 진출했나보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분명 입질하여 꺾은 것으로 봐서 옥수수는 토끼의 소행으로 판단했다. 잠시 토끼에게 미운 마음을 보내다가 저들이 무슨 죄인가. 그들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행위인데 싶어 웃어넘겼다. 누가 먹은들 어떤가.

그런데 그들은 나의 자비심을 시험이라도 하듯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호박잎이 초토화되고 그 다음부터는 목표물이 달라졌다. 가을에 노란 꽃을 보기 위하여 서너 뿌리 사다 심은 돼지감자가 3년이 지나니 제법 번져 무리를 이루었다. 줄기도 튼튼하게 자라 멋진 가을꽃을 피워 주리라 기대했는데 그 줄기를 하나씩 자빠트려놓고 야무지게 잎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 행위는 연일 반복되어 이제는 딱 두 줄기가 남았고 이것도 언제 절단 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이 정도로 그들의 소행이 끝났다면 그들에게 불공 잘 했다고 생각하고 귀엽게 봐주려고 했는데 그들의 만행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옆집 화분에 심은 호박잎도 절단 내고 우리 앞마당까지 진출하여 도라지 잎도 따먹고 심지어 화분의 샤론로우즈와 미나리 새순, 그리고 화분에 있는 가지의 잎까지 입을 대고 있었다. 이제 나도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기에 이르렀다. 나는 도라지 잎을 따먹다 내 인기척에 놀라 도망치는 제법 통통한 래쿤의 엉덩이를 보고야 말았다. 야채를 심을 때는 사람들과 나눠먹을 생각만 했지 짐승들에게 바칠 생
각은 없었다. 그동안 이런 초유의 사태가 없었고 경험이라면 겨우 다람쥐들이 열매를 조금 갉아먹거나 따는 정도여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데 마침 천연 퇴치제를 연구 개발하고 계시는 분이 있어 말씀드리게 되었다. 그들이 싫어하는 퇴치제를 만들어 줄 테니 적당한 곳에 놓아보라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냄새가 싫어 스스로 교당을 떠나게 하는 방법을 쓰려고 하는데 과연 어찌 될지... 짐작으로만 스컹크나 래쿤이 그 범인이라 지목하고 퇴치제를 만들고 있으나 다른 녀석들이면 효과가 없을 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이참에 정중하게 그들에게 고한다.“ 세상의 이치가 너도 나도 좋아야하는데 너희만 좋고 나는 안 좋은 일을 많이 저질러 내 마음이 편치 않구나. 따라서 내가 너희들을 퇴치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를 위해 현재 준비중이다. 너희들도 귀한 생명들인지라 목숨을 좌지우지 하지는 않겠으나 그래도 막상 너희들도 당하고 보면 괴로울 것이니 부디 스스로 물러나 주변 민가에 과한 피해를 주지 말 고 잘 살기를 바란다.” 그들이 내 뜻
을 잘 알아주면 참 좋겠다.

<소예리/교무.릿지필드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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