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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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 강Ⅱ

2017-09-01 (금)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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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물줄기의 중간을 보고 강을 말할 수 없듯이 삶의 노정에 있는 내삶을 예단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강물의 발원지가 있듯이 내 삶의 시작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 서울이다. 삶의 터전을 옮긴다고 하여 쌓아둔 것이 무너지거나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태극기와 무궁화를 마주했을때 내 마음 한편에서 이는 울림은크다. 가끔은 허드슨 강을 떠다니는 돛단배가 되었다가 철새가 되었다가를 반복하지만 내 몸 안에 잠재해 있는 근성은 일상을 알뜰하게이끌어간다.

국경일에는 고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행사를 한다. 고향의 봄을 노래할 때는 모두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열심히 살아 내는 일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것도읽힌다.

교민들이 자리를 같이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은 예전같지가 않다. 으레 있는 경축행사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주권을 찾기위한 선조의 희생이 나에게 머물지않고 자식 세대에까지 이어지기를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붙잡고 싶은 것은 나도 모르는사이에 훌쩍 떠나간다. 보내거나버려야 할 것은 되레 주위를 맴돌며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삶을 허투루 살지 않았음에도 삶과 함께했던 좋지 않은 기억이나 후회스러움은 소멸할 줄 모르고 되돌릴 수없는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내 나이의 절반을 보낸 고국의 오래 기억하고 싶은 풍속이나 두고온 정은 하나둘 쉽게 떠나간다. 인연이라 생각했던 것조차도 그랬다.

새롭게 다가오는 뿌리 없고 알갱이없는 쭉정이는 내 곁에 차곡차곡쌓여만 간다.

세월의 수레를 밀고 걸어온 수많은 시간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삶을 거슬러 오르던 길목에서 허드슨 강을 만났고 햇살가득한 이국의 숲길도 걸었다. 때로는 흔들리는 나뭇잎이 되어 상처입은 나그네로 방황도 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일터를 찾을 때면 조그만 희망의 싹과 대면할 수 있었다. 무기력해질 때는 든든한 방패로 무장한 가족과 하나둘 알게 된교민이 나를 지켜주었다. 마음속에묻어둔 꽃잎마저 메말라 무너질 때도 허드슨 강은 침묵하고 기다리는지혜를 내게 들려주었다.

허드슨 강은 승용차로 53초면건널 수 있다. 허드슨 강을 넘나들며 들었던 생각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1분에 미치지못한 시간이 내 삶의 고비마다 마음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각오를 다지게 했다. 강의 너비는 정해진 내 운명과도 같다. 1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다리 아래를 흐르는푸른 강물의 깊이를 나는 알지 못한다. 흐름이 느린 강이라고 하지만 사계절의 물 깊이는 일정치가않을 것이다. 정해진 물 깊이도 모르는 나의 아둔함으로 매일 마주치는 푸른 눈을 한 사람들 마음이나앞일을 헤아릴까 싶다.

허드슨 강 위에 놓인 조지 워싱턴 다리를 교민들은 앞글자만 따서 조 다리라고 부른다. 오는 내내자유의 여신상은 내 생각에 머물렀다. 매일 밤이면 고국의 사정을 텔레비전을 통해 듣고 있다. 정치 상황으로 고국이 시끄러운 것 같다.

우리는 며칠 전 금요예배에서도 고국의 안정을 기원하는 합심 기도를 했다. 앞으로도 나의 기도는 이어질 것이다.

비 갠 뒤라 쾌청하다. 허드슨 강을 지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매일보는 햇살이지만 뉴욕의 오늘은 더없이 맑다. 우산만 안 들었다 뿐이지 비옷 두른 나의 차림새가 부자연스럽다. 처음 이곳 생활도 지금처럼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월간문학 통권 560호 신인작품상 수필부문 당선작 하반부)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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