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화꽃 향기

2017-08-30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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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꽃을 유난히 사랑한 남자, 타게스 이야기가 있다. 타게스는 시들지 않는 꽃을 만들기 위해 다른 꽃잎을 따서 만들었는데 그 꽃에 생명력이 없어 슬픔에 쌓였다. 이를 본 꽃의 여신 플로라가 그 꽃에 생명을 불어넣어준 꽃이 ‘국화’라고 한다. 국화는 꽃 자체가 요란하지 않아 흔히 소박, 검소, 순수, 고매함, 그리고 감사, 사랑 등의 꽃말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을 보면 어느 꽃보다도 향기가 짙은 국화꽃을 떠올린다.

우리 사회에서 국화꽃과 같은 사람을 들라치면 투병중인 이해인 수녀와 함께 맑고 아름답게 살다 간 김수환 추기경, 이태석 신부, 법정스님을 생각하게 된다. 법정스님은 늘 언행이 일치되어 삶 자제가 법문이었던 일생을 살다 간 위인이었다.

그의 맑고 향기로운 영혼은 그의 사후에도 진한 향기를 남기면서 그의 가르침은 두고두고 아름다운 감동으로 남아있다. 법정은 난초 하나 소유하지 않고 오로지 오두막에서 자연과 더불어 맑고 청명한 삶을 살면서 위대한 가르침을 후세에 남겼다. 평생 빈손으로 살다 간 법정은 장례식을 하지 말라, 사리를 찾지 마라, 재는 강원도 오두막에 뿌리라는 말을 남기고 여생을 마무리하였다.


아무리 풍진 세파라고 해도 늘 고운 언행에 힘쓰며 사는 사람.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는 사람, 한결같이 늘 변함없는 사람, 믿음을 주는 사람,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 욕심을 품지 않는 사람,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 항상 감사하며 사는 사람, 긍정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 넓은 아량을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는 사람, 이들이 바로 맑고 아름다운 사람, 사람냄새 물씬 나는 국화꽃과 같은 사람이다.

이제 바야흐로 9월이다. 지난주만 해도 화씨 80도를 웃돌던 기온이 어느새 70도선으로 뚝 떨어지면서 성큼 가을이 다가온 것을 느끼게 한다.

가을하면 뭐니 뭐니 해도 국화꽃이 대세이다. 이제 곧 형형색색의 국화꽃이 온 사방에 흐드러지게 피면서 아름다운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 연일 테러, 인종폭력, 핵미사일 등과 같은 어두운 뉴스들뿐이고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도 매우 어렵고 버거운 일 투성이다.

경제적으로 한인사회 경기가 오랫동안 침체해 오면서 이미 사업체를 접은 한인들이 한 둘이 아니고, 남아있는 업소라고 해도 대부분 렌트비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힘겨운 상황이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 소득은 정체돼 있는데 주거비는 계속 급등해 80%가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AWCA뉴저지가정상담소의 올 상반기 발표에 따르면 정신적인 문제에 직면한 상담도 88건이나 된다고 한다. 게다가 다른 주에서 돌발한 긴급재해도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최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역대급 허리케인 ‘하비’가 강타, 도시가 침수되면서 10여명이 사망하고 한인거주자를 포함, 십수만명이 하루아침에 이재민이 되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오도 가도 못하게 고립돼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주민들도 있다. 이 영향권의 인근 루이지애나주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처럼 주변에서 절망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희망과 용기를 주면서 우리 함께 살아가면 안될까. 그런데 향기로운 사람, 즉 지식이나 물질, 마음까지도 아낌없이 나누려고 하는 푸근한 마음의 소유자는 별로 많지 않아 보인다.

가을은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외롭고 힘든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풍성한 마음을 요구한다. 꽃의 향기는 바람이 전하고 사람의 향기는 마음이 전한다고 했다. 멀리 있으면 그립고 곁에 있으면 행복한 사람, 함께 하면 늘 향기롭고 따뜻한 사람, 그런 이들이 곁에 있어 오늘도 향기로운 그런 날들을 맞고 싶다.

향기로운 꽃은 향기를 맡는 사람에게 순간적인 행복을 주지만 향기로운 사람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의 말처럼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살기 힘들다고 하여도 맑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득하다면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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