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선생님

2017-08-26 (토) 전태원 /자유기고가
크게 작게

▶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나무가 제대로 자라는 데는 좋은 토질에 영양도 제대로 공급해야 하지만 충분한 햇볕과 물은 필수적이다. 한 인간이 올바로 커서 거목이 되어 사회에 유익한 인재가 되는데도 역시 훌륭한 부모의 교육과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가는 필설로 설명이 필요 없다.

천재는 타고 난다고들 말을 한다. 하지만 그 기질과 재능을 발굴, 역량을 개발하고 드러내는데도 역시 주위의 뒷받침은 절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영문학자로서의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던 배경에는 부친의 선견지명과 전폭적인 학문적 지원이 기저를 이루었던 것이다.

경기고녀 입학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하루 전에 이사를 서둘렀던 어르신의 열정과 기지는 가히 만인의 모범이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정때 교과과정에서 영어를 뺐던 일본치하에서 독학으로라도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독려하셨던 부친이야말로 대한민국 인물사의 한 줄을 장식하고도 남을 위인이라 해도 과찬이 아닐 것이다.


난세의 역동적인 시대를 맞아 혼동과 혼란속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으셨던 부친의 철학과 교육사상, 사회주의자로서의 올바른 자세,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사랑했던 애국자임을 아는 분은 많지 않다. 또한 당시 다른 명사들과는 달리 가족을 아끼고 거두었던 훌륭한 가장이요, 남편이요, 아버지였던 부친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영균도 없었을 것이고 한국 최초의 전문의였던 허영숙 여사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모 나혜석의 탄생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말, 왜정 치하 당시 자신의 부인을 일본 유학까지 권유, 실천에 옮겼던 당대의 걸물이자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아닌 가? 평생을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서는 한 번도 도(道)가 아닌 길을 내딛지 않으셨던 분, 춘원, 육당, 신익희, 장덕수, 송진우, 김성수, 조소앙 등 기라성 같은 정계와 학계, 재계의 내로라 하는 인물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활동했던 사람으로서 개인의 명예와 야욕을 채우는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진정한 애국자가 아닐까 한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온갖 것을 다 누리면서도 항상 가난한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약자들의 편에 서서 만사를 처리했던 사회주의자, 북한공산당 도배들이 주창하는 사회주의가 아니고 항시 국가대계와 민족의 번영과 안위를 우선시 했던 애국자로서의 사회주의자였다.

9.28 수복후 금싸라기 같은 사직동 대지에 피난민들이 무단 입주, 가건물을 세우고 살았던 엄청난 땅을 무상으로 나눠 주셨던 눈물겨운 미담부터 일찌기 소작인들에게 소작료도 안 받고 해방 후에는 소유지를 극히 일부만 남기고 모두 무상분배해 준 주인공이 부친이라는 사실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오랫동안 유교사상의 지배와 세습의 제도에 철저한 시대를 살았던 당시 문화와 정서로 보면 나경석 어른께서는 두어 세대를 앞서간 현자(賢者)이셨을 뿐 아니라 모든 재산을 다 날리고 인생의 조락기를 맞아 병석에서도 모든 것을 ‘나라’에 귀결시켜 생각하고 판단했던 숭고한 정신은 지금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철학과 정신의 소유자라고 갈파하지 않을 수 없다.

선비답게 사는 품격과 기개를 잊은 현 세대의 군상들을 하늘에 계신 어른께서는 무어라 나무라실까 의문스럽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인간들, 국가의 장래는 안전에도 없는 국민 정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남을 배려하는 문화와 정서는 눈 뜨고도 찾아 볼 수 없는 현실이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

여기까지가 51년만에 찾아뵈었던 스승, 나영균 교수의 저서, ‘일제시대, 우리 가족은’을 독파한 후 옮긴 필자의 과문한 독후감이다. “영어영문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먼저 우리 국어, 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금언이 평생 간직해온 나의 좌우명이다. 지난 번 뵀을 때 던지신 화두 역시 ‘남을 먼저 배려하는 풍토와 정서가 전혀 안 돼 있다.”는 게 문제라는 말씀이었다.

서글픈 현실은 인사동뿐만 아니고 심지어는 이대 사거리에도 책사를 찾아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탄식 어린 말씀이었다. ‘아이폰에 미쳐 책을 잡지 않는 세태로 전락했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자세가 사라진지 오래이다’ 라는 잔잔하지만 또렷한 어조의 지적은 동석한 사람들을 숙연케 하셨다.

<전태원 /자유기고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