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망각을 용서로 대체하자

2017-08-26 (토) 주진경/은목 회장·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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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과의 원한관계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잊혀 졌다가도 그것이 언젠가 편편(片片)으로 되살아날 때 그 원한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가슴 아픔이 되살아나게 된다. 망각(잊어버리고 마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대한 무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망각을 용서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매년 지키고 기념하는 날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독일군의 압제 하에 폴란드의 게토(Ghetto)라는 구역에 갇히고 유폐되어 억압당하다가 불태워 죽임을 당한 것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들의 구호는 “죄는 용서하되 역사는 기억은 하자! 잊지 말자 Ghetto..!”이다.

즉 원수 된 과거지사를 기억해 언제까지나 원수가 되어 원수를 갚자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원수 되는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그것을 기억하고 선한 앞날을 펼쳐 가자는 것이다. 정말로 기억하고 간직하며 감사해야 할 일들은 그다지도 쉽게 잊어버리는 일이 허다한 반면, 섭섭했던 보잘 것 없는 사소한 감정은 잊지 못하면서도 자기가 입은 은덕과 신세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는 식으로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것을 “세월 탓, 망각의 소치”로 회칠하고 만다. 그것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호의적 망각이 아니라 배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망각은 은총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을 탈출하여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려했던 것은 은혜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배반한 것이요 생각하는 능력을 버린 것이다. 아하수에로왕은 자기의 생명을 노리는 빅단과 데레스의 음모를 사전에 왕께 고하여 왕의 생명을 구하게 한 모르드개의 공로를 잊어버렸었다.(에 2:21-22) 그러나 이것이 세월이 지났다 해서 그것을 잊어버릴 일이 아닌 것이었다.

그는 생각의 능력을 버린 것이었으며 은택을 배반한 것이었다. 그가 후일 이것을 기억해 냈다는 것은 생각의 능력을 회복한 것이었다. 나에게 가해하고 상처를 준 패려(悖戾)한자의 만행을 망각해 버린다는 것은 탈이치(脫理致)한 것이다. 그것을 용서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입은 상처와 손해가 크면 클수록 이것을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은 곧 생각하는 능력이며 망각의 방법이다.(마18:22)

우리가 그토록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입은 이웃의 은혜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망각이 아니라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망각이라는 좋은 단어의 핑계로 수없이 많은 이웃의 은혜를 배반하고 산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명심할 필요가 있다. 망각은 미덕이 아니다. 용서하는 것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씩 용서하는 것이 망각의 능력이다.

<주진경/은목 회장·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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