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관계 속의 생과 우주

2017-08-26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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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다리와 같다. 다리는 양쪽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어짐엔 세 가지가 있다. 좋은 이어짐. 나쁜 이어짐.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어짐. 우리네 생은 관계의 이어짐이다. 조상 대대로부터 관계는 시작된다. 조상의 관계가 후대까지 이어진다. 후대까지 이어진 관계는 후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자신에 한해선, 태어날 때 관계는 시작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란 관계. 가족관계다. 가족관계는 간단치가 않다. 아버지쪽 사람들. 어머니쪽 사람들. 그리고 나. 비록 한 아기로 태어났어도 수많은 가족관계가 형성된다. 자라면서 관계는 더 확대된다. 즉 가족을 떠난 사회적 인적 관계다. 관계를 떠난 인간. 물 밖의 고기와도 같다.

존재주의자로 불리길 원했던 실존철학의 대부 마르틴 하이데거. 그는 세계 내의 자기 존재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웃과 세계에 대한 의식의 지향성을 갖고 있다. 그러니 이웃과 세계와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세계로서의 관계 안에 있는 인간에게 관계가 끊어진다면 인간은 무(無/Nothing)라고 지적한다.


그러며 세계 속의 자신의 존재를 달팽이와 달팽이집으로 비유한다. 달팽이와 달팽이집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상호관계에 있다. 세계는 인간의 일부다. 세계가 변하면 인간도 변한다고. 현존의 인간세계가 혼탁해지는 이유가 있다. 세계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변함은 가치의 변화다. 그렇다고 달팽이가 달팽이집을 벗어나선 살 수 없다.

관계는 만남과 같다. 아기가 태어나 만나는 부모. 부모와의 만남도 되고 관계와의 만남도 된다. 잘 만나야 관계도 좋다. 만남에도 세 가지가 있다. 좋은 만남. 나쁜 만남.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만남. 길거리를 가다 스치는 만남.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만남이다. 서로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냥 만났다 헤어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직장동료나 상사 부하로서의 만남. 비즈니스 사장과 고객과의 만남. 특히 결혼을 앞둔 총각과 처녀로서의 만남. 직장에선 상사와의 관계가 우선. 신경 무척 써야 한다. 이 관계가 좋지 못하면 언제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 고객과의 만남은 중요하다. 총각 처녀의 만남은 부부관계까지 간다. 평생을 가는 만남, 생사를 걸어야 한다.

하이데거가 관계철학을 논했다면 마르틴 부버는 관계신학을 논했다. 그는 그의 책 ‘나와 너’에서 말한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만남 속에서 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 신은 실제로 주고받는 대화가 있는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에서 인간과 대면하려 한다고. 이용가치로가 아닌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는 관계가 참 관계다.

부버는 사람을 인격체인 너로 보라 한다. 사람을 물질인 그것으로 보지 말라 한다. 너와 나, 혹은 나와 너가 되라한다. 나와 그것, 혹은 그것과 나의 관계는 잘못된 관계라 한다. 인종혐오가 왜 일어나는가. 사람을 인격체인 너로 보지 않고 사물인 그것으로 보기에 그렇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인간으로 보았나. 아니다. 사물로 보았다.

부버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서 신과 같은 성품을 만난다. 그러나 악마와 같은 성품도 만난다. 아이러니다. 원수를 사랑하란 말. 악마도 인격체로 보라는 말과 같을 수 있을까. 자신과 원수가 된 관계를 자신과 사랑의 관계로 전환시킨 사람이 있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범인을 자신의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다.

죽음이란 다른 게 아니다. 관계의 끊어짐이 바로 죽음이다. 중죄수를 독방에 가두는 이유가 있다. 다른 죄수들과의 관계를 끊어 더 고통스럽게 만들려 하는 데 있다. 사람의 생이란 관계의 시작에서 출발해 모든 관계의 끝에서 마감된다. 죽음을 슬퍼하는 이유. 관계의 끊어짐에 대한 연민이다. 가는 사람, 남아있는 사람. 마찬가지다.

달과 지구와의 관계. 지구와 태양과의 관계. 태양과 우주와의 관계. 돌고 도는 관계다. 둥글게 둥글게 돌고 도는 관계. 앞으로 수십억년이 지나면 이런 관계는 어떻게 될까. 태양이 사라지고 지구가 사라지고 달이 사라지고. 인간도 사라지고. 관계의 끝이다. 인간이 사라지면 신은 무얼 할까. 사라진 관계가 될까, 아니면?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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