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가시처럼 따가운 햇살을 견디며 여름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한해의 반을 성큼 건너와 버렸다. 여름 휴가를 떠났던 이웃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새학기를 앞두고 준비물을 사러 나온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모처럼 작은 도시는 활기를 되찾는다.
저녁무렵 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잦아 드는가 싶더니 후덥지근했던 공기마저 서늘하게 바꾸어 놓았다. 아직은 위풍 당당한 여름이지만 곧 가을과 영역을 다툴 것이다. 계절은 늘 이런 식으로 오고 또 갔었다.
지난 주말에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아픈 역사가 배경이 된 ‘ 군함도’ 와 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해변에 고립된 연합군의 철수라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 한 ‘Dunkrik’ 였다. 두 영화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희망이라는 출구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지만 표현 방식은 많이 달랐다.
‘군함도’ 에서는 그 절망의 시간에 그들을 유린한 자가 그동안 믿고 의지했던 같은 조선인이어서, 우리가 숨기고 싶었던 민낯을 마주할 때 처럼 무겁고 불편했다. 물론 영화적인 요소를 위해 각색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일제 강점기에 대한 울분과 친일파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본의 만행에 대한 비판보다 부역자에 더 촛점이 맞추어진듯한 영화를 보며 불편한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군함도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유일한 희망이 섬에서의 탈출이라는 역사속 현실을 슬픔으로 느끼는 까닭이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어둠속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반면 ‘Dunkrik’ 에서는 한 사람의 빛나는 영웅을 내새우기 보다는 덩케르크 해변에서의 긴박한 상황에만 집중하여 전쟁을 대하는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차분하게 그리고 있었다. 문스톤호의 도슨 선장이라는 평범한 인간을 통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존
엄성을 얘기함으로써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 내려는듯 보였다. 침몰중인 배에서 간신히 구조된 소위의 초조한 얼굴도, 토미와 깁슨의 불안한 얼굴도, 배에 오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병사들의 무표정한 얼굴도 그들이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삶에 대한 희망의 다른 얼굴 이었다.
태풍이 한순간에 모든것을 삼키고 지나간 후에도 바다에서 나고 자란 사내는 다시 바다로 나서는데 주저함이 없다. 휩쓸고 가져간 만큼 다시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만 바라보며 땅을 일구는 늙은 농부의 마음이 그러하고, 모든 사람들이 아침을 맞이 하는 경건한 마음도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기 회복이 느리고 불황이 길어짐에 따라 그동안 믿었던 것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무력감은 날마다 조금씩 키가 자란다. 힘겹게 잡고 있는 끈이 희망이라는 이름표를 단 풍선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스로 자존감을 놓치 않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비상구는 늘 열려 있을 것이다. 회색 콘크리트 벽으로 꽉막힌 도시의 작은 방, 그 작은 창에는 그 만한 크기의 화분이 위로일 수 있겠다. 매일 새로운 시작 앞에 경건하고 뭉클하다.
.
<
최동선/ 전 한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