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도 없는 것이, 모나지도 둥글지도 않는 것이, 향기도 없고 맛도 없는 것이,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것이, 그 조화가 하도 오묘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마음이란 의식, 생각, 감정과 같은 정신적 작용을 가리킨다.
머리는 지성, 의지, 논리적 사고 쪽에 비중을 두는데 비해, 마음은 느낌, 기분, 감정과 같은 정서 쪽에 가까운 정신작용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의 인간성을 논할 때, 마음이 착하다든지 또는 마음씨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란 말은 그 사람의 품성과는 관계없이 기억력이나 사고력 창의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로 쓰인다. 살면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지 머리가 아니다. 머리가 비었다는 말은 배운 게 없고 생각이 모자란다는 뜻이요, 마음을 비웠다는 말은 현실적 타산을 버리고 질투와 증오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음을 이른다. 마음을 비운 상태-무거운 짐을 벗고 난 심정, 이 얼마나 편하고 홀가분한 기분이겠는가.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쉽사리 마음을 비우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욕심’ 때문이다. 먹고살려는 욕구는 본능적인 것이니 근원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 욕망이 사라질 때 사람은 초월하거나 아니면 허무에 빠진다. 보통 사람인 우리는 초월의 경지에서 살아 갈 수 없고 욕(慾) 자체를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욕구의 성격과 범위를 얼마쯤 다스릴 수는 있다. 문제는 너무 잘 먹고 잘 살려는데 있다. 생존에 꼭 필요한 욕구가 아니라 변질된 욕망 때문이다. 툭하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려 들고, 적어도 주변의 남들 보다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심리상태, 소유를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 덩어리.
세상에 있는 건 다 가지고 싶고 남이 하는 짓 다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 놈의 마음이란 것은 온통 욕심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문제는 또 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하는 말을 ‘내가 바로 만물의 척도’라고 믿는 과대 망상적 자아주의, 힘은 정의이며 그 힘은 폭력을 통해서 구현 된다고 하는 ‘폭력정의론’이 판을 치고 있음이다.
짐은 바로 법이라는 절대왕권시대의 임금님, 면죄부를 팔아먹던 중세 교회의 사제들, 같은 사람끼리 인신(人身)을 팔고 사는 중세의 노예상, 불상한 노동자의 노동력을 헐값으로 착취한 악덕 자본주, 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워 특정 인종에 대한 멸종정책으로 수백만의 목숨을 도축장의 가축처럼 도살한 포악무도한 독재자, 가난 한 노동자 농민을 살린다는 깃발을 들고 혁명을 일으켜 70년 동안 인민을 온통 거지로 만들고 인권을 유린 한 공산당, 종족이나 종교에 대한 편견과 복수심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는 테러리스트… 인간의 비뚤어진 편견과 지나친 욕망이 역사 현실 속에서 빚어낸 비극은 한이 없다.
100년도 못 살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많이 가진 것 다 써보지도 못하고 사라질 거면서 양심을 속이고 법을 어기며 애타게 살 것인가, 아니면 주어진 분복을 대견하게 여겨 소욕지족(小欲知足)으로 정주고 사랑 나누며 마음 편히 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정영휘<예비역 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