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과 악

2017-08-19 (토) 고영준 /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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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불가능한 강력사건이 펑펑 터지는 요즈음이다. 인간의 악함은 타고난 운명이고, 나의 선함은 인간으로서 갈고 닦아 어렵게 얻은 의지적 행동일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의 이분법적인 상관관계는 태고적부터 사회적 규범을 이루는 근간으로 사용되어져 왔다 .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선함과 악함을 실행에 옮기면서 사회적 가치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 핵심이 결국 인간 스스로임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결국 선의 행함도, 악의 행함도, 인간의 자아 의지로 인해 표출되어지는 인간의 양대 본성일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연구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내어 놓는다. 이런 다각적 연구를 통하여 좀더 인간 스스로를 이해하고, 인간으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인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가능성에 대해서 대비하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그런 시도를 통해 쌓아져 온 방대한 자료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큰 무리없이 조화롭게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필자는 이번 칼럼을 통해 세상의 선함과 악함을 논하기 보다는 좀더 본질적인 인간 본연의 선함과 악함을 이야기한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한다.

순자의 성악설과 맹자의 성선설은 공통적으로 인간 본연의 본성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두 철학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공부가 필요하겠으나 필자는 우리의 생활에 밀접한 현실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려 한다. 그것은 바로 선함과 악함의 행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의 자세이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지만 나쁜 환경이나 세상의 잘못된 욕망으로 인해 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 반에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악한 존재지만 도덕적 수양 또는 학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선한 인성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두 주장의 중대한 다른 점은 인간의 선함과 악함을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이다.
난 원래 착한데 악으로 가득찬 세상으로 인해 악해졌다고 세상과 하늘을 탓하며 자신을 정당화 하는 모습은 우리 주위에 흔하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인간들의 노력은 길을 잃는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 하면서도 “천하에서 가장 귀한것은 백성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인간 스스로의 교정의 가능성을 믿고 의지하고자 하는 철학자의 고뇌가 담겨져 있는 듯 하다.

더이상 나의 악함이 하늘의 벌로 받은 것이 아니듯이 나의 선함도 하늘의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님을 자각하고, 오직 인간이기에 악함과 선함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깨달아 인간의 의지로 선이 악을 이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영준 /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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