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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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는 민족성?

2017-08-18 (금) 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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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정책이 심각하다. 전쟁의 루머가 한반도를 둘러싼 극동 지역을 불안하게 하고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투지를 회수하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정작 비상사태를 준비하고 걱정해야 할 한국인들은 천하태평, 휴전선 바로 십리 앞에서 음악회를 열고 노래와 춤을 즐기고 있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 이다. 위기라는 소리를 60여년 듣고나니 이제는 무감각해졌다고 한다. 역사속에 60년이 과연 긴 세월일까?

얼마전 친구들 몇이 만나 커피를 마시며 민족성에 대한 대화를 나눈 것이 새롭다. 한국의 민족성이 그렇다는 친구의 말 또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 한국민족은 한 번도 튼튼한 준비로 그 위기를 극복한 역사가 없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또 위기가 닥치면 안으로 일치 단결하여 밖에서 오는 위험을 막아내기는 커녕 내분과 당파싸움으로 지리멸렬한 것이 우리의 역사라는 비관적인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그 답답함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 이었다.


지나간 천년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일어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거란의 침공, 홍건적의 침공이 있더니 마침내 몽골의 침략으로 전국이 초토화 되고 중국을 정복한 몽골 원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강감찬, 김취려, 삼별초 등 몇 이름이 떠올랐지만, 어디에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눈앞의 위기를 인식하고 온 국민과 정부가 일치단결하여 준비하고 대항해서 위기를 극복했다는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명나라가 일어나 중국의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에 고려왕조가 한 일은 이성계에게 이만명의 병력을 주어 새로 일어나는 명나라를 치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령이었다. 위화도 회군, 이성계의 쿠데타와 조선의 건국이라는 역사가 이어졌지만,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비위만 잘 맞추면 태평성세가 이어질 것 이라는 비겁한 안일함이 조선 오백년의 분위기 였다면, 민족성을 들먹이던 친구의 의견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된 일본의 침략이 뻔한 일인데 위기를 맞을 준비는 커녕 당파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십만 양병설은 태평성대라는 허망한 관념의 유희 속에 묻혀버렸고, 이순신이라는 한 개인의 투쟁과 죽음이 그 시대의 부끄러움을 어느 정도 가리는 듯 하더니, 민족성이 그래서 그런가, 밀려오는 만주족의 말발굽에 남한산성 눈속으로 도망쳤던 임금이 걸어나와 무릅를 꿇는 삼전도의 수치를 당해야만 했다. 일제 침략을 전후한 역사와 육이오 사변을 전후한 역사의 기록은 펴지 않기로 하자.

지금은 어떤가? 지난 역사의 부끄러움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비위를 맞추면 위기는 사라지고, 평화통일 민족사랑 김정은 사랑을 외치면 너 좋고 나 좋은 태평성대가 되는 것 인가? 위기를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위기는 정말 위기가 아닌 것 인가? 평화를 원하는 마음이야 인류 모두의 염원이다. 그러나 전세계 모든 인류가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는가?

육일 전쟁을 전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헌혈소였다고 한다. 이스라엘 군인들의 빈틈없는 훈련과 준비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외국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전쟁의 루머를 들으며 좋은 직장 포기하고 모두 귀국 비행기에 오르는 모습을 기억하는 선배 노 의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준비, 준비, 준비하는 결단이 우리 한민족의 민족성이었으면 좋겠다.

<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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