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방학과 전쟁

2017-08-15 (화) 나 리/간호사
크게 작게

▶ 간호사 나리씨의 사는 이야기

방학은 신난다. 집에서 굴러다니며 쉼의 자유를 느끼는 아들의 편안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신난다.

아들을 꼬드겨서 뉴저지로 한국 영화를 보러 플러싱으로 짜장면 먹으러 가는 땡땡이의 짜릿함을 누릴 수 있어 즐겁다. 밤늦게까지 놀아도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는 부담이 없는 홀가분함이 좋다. 그 흥겨움 속에서 주어진 자유와 유쾌함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서 방학이면 늘 계획과 목표를 미리 세운다.

올 여름엔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정독하면서 서양철학을 훑어보는 것이었다. 물론 계획은 늘 그렇듯이 틀어진다. 기다리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영화와 감독과 영화적 시대배경을 좀 더 알기 위해 유튜브와 블로그를 찾아다닐수록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닫게 되었다. 소매를 걷고 전쟁 공부를 시작했다.


국방TV에서 만든 전쟁사 다큐로 서양철학 대신 ‘제2차 세계 대전’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아들도 세계사를 복습하는 중이어서 국방TV에서 들은 이야기로 아들에게 내 지식을 자랑했다.

나는 자주 나의 잡다한 지식을 아들에게 자랑한다. 그러면 아들은 진지하게 집중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친김에 아들이 좋아하는 ‘미국 독립 전쟁’도 공부했다.

사실 미국 역사는 흥미가 없었지만 국방TV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공부를 하다 보니 미국 독립전쟁에 관심이 많은 아들이 이해가 되었고, 아들도 엄마가 사라토가 전투와 요크 타운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흥분해서 자신이 아는 걸 나와 나누기 시작했다.
아들과 아내가 2차 대전에 나온 Spitfire 전투기와 활강식 Musket과 강선이 있는 Rifle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으니, 남편도 ‘전쟁이라면, 미드웨이 해전’이라면서 대화에 끼어든다.

그런데 갑자기 신문과 인터넷에서 북한과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하기 시작했다. 같은 전쟁 이야기인데 대중 매체 속의 전쟁에 대한 기사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주는데 비해서 우리집 전쟁 이야기는 가족이 같이 무언가를 나눈다는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이 신기하다.

올 여름 우리 가족이 이렇게 전쟁이야기로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흥겹게 보내고 있지만 내년 여름에는 어떤 일로 유쾌하게 보낼지, 가족이 무슨 대화거리를 공유하면서 지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때까지 반세기 넘게 전쟁 없이 지내온 내 고향 땅에 매일매일 별 이야기 없는 평화로운 어제 같은 오늘이 계속 지속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나 리/간호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