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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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H를 그리며

2017-06-24 (토) 전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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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갔다. 오늘 째 사흘간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어쩔 수 없이 한번은 다 가야 할 길이건만 그토록 애잔한 우정을 나누었던 벗이 세상에 없다는 게 너무 허전하다. 바로 네가 없다니 말이다.

금년 5월 24일 S가 갔다.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짜식... 연락도 없이 있다가 그냥 가버렸으니… 속으로 괘씸한 자식이라고 욕이 나올 정도로 섭섭했는데 알고 보니 누구에게도 말 못할 가슴 찢어지는 사연이 있었던 걸…

짜식, 왜 그리 멀리 이사를 가서 만나기도 힘든 서부로 가서, 옛날처럼 1시간 거리이면 수시로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하고 서로 위안도, 위로도 하며 오손 도손 살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렇게 심장마비로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 텐데…


유명한 정형외과 전문의였는데도 자기 일신은 거둘 수가 없었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막내 딸이 아파서 집에만 박혀 있는 생활을 한 지가 근 20년씩 되고 그래서 마누라도 힘들고... 그 모든 어려운 상황을 혼자 견디며 해결이 안 되는, 해법이 없는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던 불쌍한 친구, 가슴이 찢어진다.

그렇게 S가 갔는데 또 청천벽력… 친 형제보다 더 가까웠던 동무가, 얼굴을 마주 보고 손을 잡아 본 게 불과 한 달여, 이상하게 마누라들을 서양식으로 껴안으며 잘 있으라고 나눈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정말 이상하게도, 4주간 체류하는 동안 한 번도 나에게 음식 값을 내지 못하게 한 친구…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앞을 가려 손수건을 놓고 닦으며 ‘친구를 잃은 변’을 늘어놓는다. 만 6세 부터 70년 친구, 1966년 11월6일 파월 근무차 한국을 떠난 후 50년간을 떨어져 산 친구… 그런데 한시도, 항시도 H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나 생각을 해 본적이 없이 가슴에 늘 함께 했던 고마운 친구.

이런 친구가 있어 뿌듯했고 그런 그를 만나러 일 년에 한 번 내지 두 번씩 모국을 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비행기에 탑승,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출구를 나올 때면 늘 가슴 벅차 올랐지. 미안한 얘기지만 형제, 친지는 둘째였다.

너무 슬프고 너무나도 슬프다! 친구가 없는 한국, 대장 형님께는 안 된 말이지만 너무 허전해서 과연 다시 한국 방문을 하게 될까! 그래도 한번은 암브로시오로 세상을 하직한 너를 만나러 가야겠지. 회고해 보면 난 너에게 너무 많은 걸 받기만 했지 해준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아프다.

월남을 떠날 때, ‘가지 말라고. 왜 여기 같이 있지. 왜 가느냐고.’ 했던 진정 고마운 친구… 한국을 떠나면서 동생을 부탁한다고 한 마디 했는데, 내 동생 Y를 본인 회사에 특채로 취직을 시켜 보살펴준 죽어도 잊지 못할 은혜를 베풀어준 동무.

재 파월시 자비 부담으로 여객기 탑승권을 구매해야 했는데 선뜻 차용증도 없이 빌려준 고마운 친구. 3개월분의 월급 액수, 1970년도 5월 당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70년 평생을 내가 해준 것보다 더 크게 많이 베풀어 준 친구의 우정, 생전에 흡족하게 갚아주지 못한 아쉬움, 눈물겨운 우의에 보답하지 못한 미안함, 가슴이 쓰리고 아픈 마음 달랠 길 없다.


언제고 우리 다시 만나겠지. 그 곳 하느님 계신 나라에서 재회해 영원히 이별이라는 게 없는 곳에서 부담 없이 한 잔 걸치고, 골프도 치고 여행도 함께 하게 될 거야. 우리는 하느님 자녀로한 형제가 되었으니 더 없이 기쁜 일 아닌가! 정말 잘 했어, 그리고 잘 됐고…

친구야! 정말로 고마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기도 할게. 물론 연도도 바칠게. 잘 있다고 가끔씩 꿈에도 나타나 주렴.난 정말, 호모도 아닌데 네가 정말 좋았거든. 평생 우린 긴 말이 필요 없었지. 그냥 서로 마음을 꿰뚫고 있었던 거야.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생전에 좋은 사람, 훌륭한 분들, 날 밀어주시고 이끌어 주신 높은 양반들, 많이 만났지만… 그런데 네가 그 중 제일이었어. 이런 얘기 생전에 했어야 했는데…

언젠가 술에 쩔어서였던가, 비슷한 말을 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몇 번씩을 얘기해도 괜찮았을 텐데… 영어로, Any way, 지금 얘기하는 것도 네가 다 알아 듣는다고 믿고 하는 것이야. 친구야, 거기서 외롭지 않게 가끔씩 꿈에라도 나타나 우리 같이 놀자꾸나. 술도 한잔 씩 걸치고…

내 마음 알겠지? 사실 글로 쓰니까 이렇지, 네 앞에서 어찌 이처럼 넉두리를 할 수가 있겠어…’야, 네 마누라, 너무 멀리 있어서 맛있는 밥 한끼라도 사주기 어려운데 미안하구나. 식사 대접 한번 하려면 14시간 비행기 타야 하는 데 그래도 일 년에 한번은 가야겠지. 너에게 진 빚 일부라도 갚으려면 말이다. 친구야, 잘 지내라.

<전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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