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빠라고도 불리는 아버지의 사전적 어원은 중세 국어의 아바에서 왔으며 조선 이전 시기부터 사용됐다. 아버지는 아바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지’의 합성어다. 중세 국어에서는 아바지와 아바니 등과 같이 쓰였고 이후 아바지만 사용되다가 아버지로 정착되었다. 평안도 방언엔 아직도 아버지를 아바지로 부른다.
아빠란 말은 우리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600년까지 약 1,000여년에 걸쳐 그리스와 메소포타미아 등에서 사용됐던 아람어에도 아빠(abba)가 있다. Abba(아빠)의 어원은 아버지를 뜻하는 아브(Ab)와 강세형 접미사 아(a)의 합성어로 이 경우엔 앞의 자음이 중첩되어 아빠(abba)가 되었다 풀이된다.
아버지의 날을 전후 해 먼저 아버지에 대한 어원을 살펴봤다. 아버지,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회초리, 아니면 술 취해 들어오는 비틀거리는 모습. 어느 친구의 아내는 그녀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에 대한 연상을 이렇게 떠올린다. 매일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늦게 들어와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 일장 훈시를 하는 아버지로.
좋은 아버지상이 아니다. 아니, 이런 아버지에게 점수를 주라 한다면 영(0)점을 줘야겠지. 그렇다면 좋은 아버지상은 어떤 아버지일까. 나가는 교회에 정권사란 분이 있다. 유명대학교에서 물리학으로 철학박사(Ph.D.)학위를 받은 지식인인데 아들이 하나 있다. 이 분,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밖에는 모른다. 좋은 아버지상이다.
예로부터 아버지는 권위의 상징으로 쓰여 왔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인류는 발생 이래 지금까지도 가부장제를 선호해오고 있다. 가부장제(家父長制)란 다른 말로 부권제(父權制/patrirchy)라 부를 수 있다. 부권제와 가부장제도는 남성중심주의를 내포하며 모든 분야에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부권제를 해석하면 아버지의 지배란 뜻이며 씨족의 아버지, 남성추장, 총대주교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파테리아케스가 어원이다. 파테리아케스는 아버지를 뜻하는 파테르의, 혈통과 후예란 의미이며 내가 지배한다는 뜻의 아르코와의 합성어다. 부권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와 고대 이스라엘과 중국 등 지구 전체에서 유래됐다.
한반도의 경우, 지금부터 100년 전만 해도 가부장제는 온 조선을 덮고 있어 아버지는 부인 외에도 첩을 몇 명씩이나 두어도 괜찮은 관례로 취급되었다. 이건 좀 나은 편. 3국 시대 그리고 고려와 이씨왕조에서는 왕은 중전마마(왕의 아내) 외에도 수십, 수백의 궁녀를 거느리는 등 가부장제도와 부권제의 모델이 되었었다.
21세기. 지금은 어떤가. 사회 등 각 분야에서 남성중심주의가 사라지진 않았다. 아직도 선호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위, 즉 부권제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된 것 같다. 오히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즉 여성들의 권위가 더 강해져 있음이다. 아내의 치맛자락만 잘 붙잡고 다녀도 득을 보는 아버지들이 요즘 많다.
그리고 아들 보다는 딸을 좋아하는 것이 대세다. 왜냐하면,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군대에 가면 손님이 된단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아들은 낳으면 1촌, 대학가면 4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이 된다고. 미래의 아버지들이 될 아들들의 위상이 이처럼 추락돼 가고 있는 것이 21세기 현상, 지금의 상황이다.
남성들 특히 은퇴한 아버지들에 대한 비유로 나온 것도 있다. 퇴직한 남편에 대한 삼식(三食)이 씨리즈다. 집에서 하루 한 끼도 안 먹으면 사랑하는 영(0)식이. 하루 한 끼를 먹으면 귀여운 일(1)식이. 하루 두 끼를 먹으면 그냥 두(2)식이. 하루 세끼를 다 먹으면 삼시쉐끼(3식이)다. 세(3)끼에 간식까지 먹으면 종간나 쉐끼란다.
풍자지만 아버지의 서러움이 담긴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들의 슬픔의 시대. 아버지들이 인류 태생 이래 여성과 힘없는 자들에게 수 만년 동안 지어 온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제의 죄 값으로 치루는 대가가 아닐지. 참 좋은 아버지,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가 아니고 가정과 직장밖에 모르는 정권사임이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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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