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쾌한 정숙씨

2017-06-09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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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씨가 ‘유쾌한 정숙씨’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자신은 ‘영부인’보다는 ‘여사님’으로 불려 지기를 원한다고도 한다.

지난 5월10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취임 선서식장에서 활달하게 걸어가는 모습과 관저에서 본관으로 출근하는 대통령의 팔에 매달려 “가세요 여보, 잘 다녀오세요.” 하고 상냥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얼마나 씩씩한 지, 색다른 모습의 영부인에게 국민들은 놀라면서도 즐거워했다.

또한 혹여 대통령보다 한걸음 앞서 걸으면 어쩌나 걱정도 된 것이, 남편이 대통령이고 자신은 대통령의 아내일 뿐인 것이다.


대선기간동안 정숙씨는 양손 흔들고, 엄지 척 올리고, 남편을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자신이 한 말에 스스로 박수치며 좋아하고, 두손으로 얼굴 가리며 핫하하 웃고....동네에서 보는 소탈하고 따뜻하며 다소 수다스런 아주머니 모습에 다들 마음이 편해졌고 가깝게 여겨졌었다. 영부인이라고 고상한 척 고개만 까딱하거나 손만 우아하게 흔들지 않는 모습이, 정숙씨가 밝고 명랑해서, 잘 웃어서 좋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 영부인의 덕목은 무엇일까? 정치적 식견이 있는 척, 매사 아는 척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무엇보다도 재벌사돈을 맺지 말아야 한다. ‘유쾌한 정숙씨’의 경우 아들 딸 모두 결혼했으니 해당사항 없다.

또 영부인이 뇌물을 남편 몰래 받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은 기막힌선례가 있으니 절대 가까이 하지 않을 것 같다. 영부인은 친자식의 정치 참여도 말려야 한다. 이 또한 대선기간동안 아들의 특혜채용 문제로 곤욕을 치렀고 전공도 정치와는 무관한 디자인 쪽이니 걱정 안해도 될 것 같다.

그동안 한국의 역대 영부인들은 자기 일을 가진 전문직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대통령의 외교담당 비서 역할을 했고 공덕귀 여사는 내조에 치중했다.
육영수 여사는 올린 머리를 한 현모양처 모습에다가 양지회 활동을 통한 사회봉사를 부각시켜 한국의 영부인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

이순자, 김옥숙, 권양숙 여사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던 기억이 난다. 손명순 여사는 대통령의 뒷자리를 주로 지켰고 이희호 여사가 사회운동가 출신으로 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을 챙겼다. 김윤옥 여사는 한식의 세계화를 이루겠다며 뉴욕에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한식당을 열겠다고 활동을 예고했지만 용두사미였다.

대부분의 영부인들은 자기 힘으로 그 자리를 쟁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혼한 남자가 대통령이 되었기에(물론 선거운동은 함께 했다) 영부인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한국의 영부인이 너무 나서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영부인은 대통령의 내조자, 동반자로써 개인의 이익을 위한 활동을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유쾌한 정숙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국정에 시달린 대통령이 집에 와서는 웃을 수 있게, 그래서 다음날은 대통령이 일을 더 잘 해 국민도 웃을 수 있기 바란다.


그러자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가지 예로 성악과 출신에 서울시립합창단 단원으로 수년간 활동하던 경험이 있으니 청와대 식구들로 구성된 청와대합창단을 만들어 외교사절이나 내빈 환영프로그램 중 하나로 깜짝 공연을 보여주면 어떨까?

안내자, 요리사 모두 그 복장 그대로 합창을 하고 간혹 노래 중간에 정숙씨의 짧은(?) 독창 순서를 넣어도 좋겠다. 이를 시초로 구청 합창단, 지역사회 합창단 등을 전국적으로 만들어 구민들을, 동네사람들을 웃게 만들면 지난 몇 년간 블랙리스트로 침체된 문화계를 되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또한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자신도 합창단을 그만 두었고 딸 역시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으니 이러한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기 바란다. 차별이나 불이익, 소외된 이웃이나 소년소녀 가장 등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두루두루 살펴주기 당부한다.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하루 동정에 이어 ‘유쾌한 정숙씨’의 공식 일정도 간간이 뉴스에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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