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방이 특기였던 남자

2017-01-28 (토) 최원국/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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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A는 특등 사수 군인이 아니다. 그는 병원에서 주사 한방으로도 감기가 낫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런 그가 한참 재미있게 살 나이인 60대 중반에 상처를 했다. 그는 대범하고 쾌활한 성격임에도 별안간 혼자 생활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의식주 생활에는 별 걱정 없이 지낼 수는 있지만 주위가 늘 허전하고 외로웠다. 그럴 때면 하소연할 수 있는 말벗이라도 있으면 싶었다.

그는 좋아하던 골프도 치지 않고 혼자 등산을 다니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가 골프를 중단한 이유를 나는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어느 날 A는 젊은 두 남녀와 함께 골프를 쳤다. 골프를 치던중 이 두 남녀가 잔돈 푼돈 내기를 제의했다.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A는 매너 좋아 보이는 그들과 즐겁게 골프를 치고 다음 약속 후 헤어졌다.

얼마후 A는 또 그 젊은 사람과 골프를 치게 되었다. 몇 홀을 돌다 여자가 홀인원을 했다고 아주 좋아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홀을 향해 달려가 정말 공을 꺼내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치는 것만 보았지 공이 떨어져 홀에 들어가는 것은 못 보았다. 그린 주위에 공이 두개 밖에 없으니 속임수를 썼다고 우길 수도 없었다.


그런데 함께 온 남자가 그녀의 말에 동조를 했다. A는 야생화같은 여자의 모습에 다투어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트로피 값도 그냥 묵인해 주기로 했다. 얼마후 그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모양이라며 트로피를 보여 주었다. 한눈에 새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는 해주기로 약속한 트로피 값을 그녀에게 주었다. 상상보다 비싼 금액이었다. 그 후에는 그들을 골프장에서 볼 수가 없었다.

후에 들으니 그녀는 다른 몇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수법으로 피해를 주고 다른 지방으로 갔다는 풍문이다. 그는 해변에는 물뱀이 있고 골프장에는 꽃뱀이 있고 산에는 산토끼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 왔다. 그때서야 그는 그 여자가 소위 말하는 꽃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골프를 당분간 그만두고 등산을 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얼마 후 산에서 한 여성을 만났다. 인연인지 그들은 서로 첫눈에 호감이 가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한 방인 그의 특기가 발휘했다.그는 지난번과 같은 전철을 안 밟으려고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 여자도 꽃뱀 같은 산토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었지만 만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각별히 언행에 신경 쓰며 계속 만났다.

그녀는 몇 년 전 남편과 이혼 했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면서 미혼인 두 딸과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싱글들이 제비족에 걸려 쪽박을 찼다는 친구들의 말을 많이 들은 터라 극도로 조심해 가면서 그 남자를 저울질하며 만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그 두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사교적이고 명랑하고 솔직해 보였다. 생활력이 있고 여성스러웠다. 그는 그녀가 사별한 전 부인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나는 두 사람이 대화하는 분위기를 보면서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들은 서로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지만 그 말들을 서로 반신반의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나의 동의를 구하고 싶은 듯 그들은 내 앞에서 서로 당신은 산토끼가 아니냐, 당신은 제비족이 아니냐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서로 아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 둘의 마음이 벌써 산의 정상 가까이 간 듯 느꼈다.

그 동안 서로 밀고 당기면서 마음을 터득한 것일까? 어느 날 그들에게서 목사님 모시고 증인 서줄 친구 몇 사람만 불러 결혼 한다는 전화가 왔다. 그 동안 두 사람 모두 자유분방한 생활에 익숙했지만 이미 깊은 강도 건너 봤고 험한 산도 올라갔다 온 경험이 있어 그들은 삶을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갈 것이다.

그녀는 산토끼가 아니고 토실토실한 집 토끼였으며 A는 강남에서 박씨를 물고 온 제비였고 둘은 한 쌍의 원앙새였다. A는 젊은 야구 선수 시절 홈런 타자답게 새로운 제2의 삶에서도 9회 말 역전 홈런을 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최원국/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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