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명문대 컴퓨터 전공했는데 놀아요”… AI발 ‘취업대란’

2025-08-12 (화) 12:00:00 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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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딩 등 전공자들 고액 취업 보장 ‘옛말’

▶ 일자리 못구해 ‘발동동’… 파트타임 전전
▶ “UC 버클리 GPA 4.0 학생도 제안 못받아”

LA 인근에 거주하는 50대 주부 박모씨는 요즘 아들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온다. 상위권 UC 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아들은 작년에 졸업한 뒤 1년간 취업 준비에 전념하며 여러 파트타임 일을 전전했으나 결국 정규직 취업에 실패했다.

박씨는 “초반 6개월간은 간간이 면접도 볼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마저도 어려워졌다”며 “결국 남편의 권유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이어 “아들이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며 관련 직종 인터뷰도 보고 있지만, 엔지니어 레벨이 아닌 포지션이라 합격해도 대학원 진학 계획은 바꾸지 않을 생각”이라며 “AI 열풍에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자들의 취업문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동안 미국에서 ‘꿈의 전공’으로 불리며 억대 연봉의 지름길로 여겨졌던 컴퓨터 관련 전공이 최근 인공지능(AI) 확산과 경기 둔화 여파로 심각한 구직난에 직면해 있어 많은 한인 대졸자들과 부모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주류사회도 마찬가지여서, 지난 10일 뉴욕타임스(NYT)는 실리콘밸리 문화 속에서 자라며 “코딩만 잘하면 성공한다”는 확신으로 대학에 진학한 수많은 청년들이 졸업 후 일자리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퍼듀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마나시 미쉬라(21)는 대학 4년 내내 코딩과 프로젝트에 매달렸지만, 졸업 전후 1년 동안 수십 곳에 지원해도 면접 제안을 받은 곳은 멕시코 음식 체인 치폴레 한 곳뿐이었다. 그는 허탈한 심정을 틱톡 영상에 담았고, 이 영상은 14만7,000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오리건 주립대 졸업생 잭 테일러(25)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지난 2년간 무려 5,762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면접은 고작 13회뿐이었고, 정규직 제안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맥도날드에 지원했지만 ‘경험 부족’을 이유로 탈락했고, 현재 실업 수당에 의존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은 명문대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말 UC 버클리 컴퓨터사이언스 학과의 제임스 오브라이언 교수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당시 테크 전공 학생들의 취업난을 다룬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인용하며 “심지어 GPA가 4.0인 최우수 학생들도 일자리 제안을 못 받고 있다”며 “하이텍 취업 시장이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전국에서는 컴퓨터 관련 학과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구 페이스북) CEO를 비롯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코딩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앱 개발과 IT 창업의 성공 사례가 젊은 세대를 자극했다.

이 열풍 속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자는 꾸준히 늘어 2024년에는 학부 과정 등록자가 17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2014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그러나 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최신 생성형 AI는 수천 줄의 코드를 순식간에 작성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초급 개발자 채용의 필요성이 크게 줄었다. 더구나 아마존, 인텔,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술 대기업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취업 기회는 한층 좁아진 상황이다.


실제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거나 이들 분야 전공자 자녀를 둔 한인들은 관련 업계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채용은 극히 제한적인 데다 컴퓨터 사이언스와 전기공학 분야에서는 경력직을 더욱 선호해 졸업생들이 관련 직종에 취업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인턴십을 해도 정규직 제안이 거의 없고, 채용 인원이 워낙 적어 인맥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환경 변화도 악재로 작용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연방정부 규모 축소와 고용 동결 정책이 이어지면서 과거 정부 부문에서 일정 수요가 있었던 기술직 일자리마저 줄어든 것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22~27세 컴퓨터과학 전공 대졸자의 실업률은 6.1%,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7.5%에 달했다. 이는 생물학이나 미술사 전공자의 실업률(3%)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CRA(컴퓨팅연구협회)는 특히 2025년 졸업 예정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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