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00일 이다.어느새…

2017-01-21 (토) 강미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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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후면 열 살이 되는 막내 녀석이 생일파티에서 전화를 한다. 친구 집에서 내친 김에 잠도 자고 오고 싶은 모양이다. 아이의 들뜬 마음을 망치고 싶지 않아 허락하는 내 목소리는 그러나 탐탁치가 않다. 밤이 늦어지며 슬슬 후회가 되더니 차로 2분 거리인 것이 더더욱 마음에 유혹이 된다. 그냥 데려와서 집에서 재울 걸 하는 후회이다.

밤에 녀석의 빈방에 들어가 정리된 이불을 괜히 한 번 더 잡아당긴다. 어느새 집이란 내게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 어질러 놓고는 혼날 줄도 잊고, 귀가하는 엄마에게 매달리는 곳, 방방마다 새근대며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그런 곳. 집은 내게 어느새 그런 곳이다.

아이의 사회생활을 존중해야 줘야지 하면서도 내일은 일찍 데려와야 겠다 다짐한다. 그런데 방을 나서는 마음 한구석이 불현듯 뻐근히 아파온다. 내일이면 돌아올 아이를 기다리는 나는 나의 안도감이 죄스럽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가진 어미의 마음을 상상할 자신이 없다.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부모라면 아마도 어김없이 다들 그럴 것이다.


아직도 9명의 실종자는 세월호와 함께 냉혹한 겨울바다 속에 잠들어 있는데 법정에 소환된 이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쁜 모양이다. 현 정국의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의 주범과 부역자들도 이미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에게 익히 얼굴이 알려진 참에도 구속이 되는 순간에는 마스크를 착용한다. 이제 그 얼굴을 가려서 어쩌자는 건지 우스울 뿐이다.

탄핵 심판 6차 심의에 증인으로 채택된 6명 전원이 출석을 회피하는 이 난장의 시국, 국정 조사에서 떳떳이 최순실을 모른다고 강변하는 김기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모른다고 하는 조윤선, 강요당했을 뿐 뇌물을 준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재용, 그 외에도 전 국민과 해외 교민까지 지켜보는 국정 조사 자리에서 괴변과 모르쇠를 일관하는 굵직하신 인사들, 우병우… 그리고 1,000만개의 촛불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은 할 일을 다하였고 자신은 엮인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대통령.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은 책임이 없고 모르고, 기억하지 못한다 한다.

묻고 싶다. 두고 나온 아이들에게 미안하여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선생님의 주검 앞에 먹먹함은 우리들만의 것인가. 사건 1,000일 만에 겨우 겨우 세상에 나온 생존자 아이들의 죄스러움과 혼란, 세월호 1,000일 추모제의 시민 연설단에 올랐으나 숙인 고개를 채 들지도 못하고 여전히 울고 있는 그 아이들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저 국민들뿐인가.

왜 저 아이들은 살아남았기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왜 옆에 있는 아이를 보고 안도하는 나와 부모들은 미안함을 느껴야 하며 그리고 이 모든 엉망의 시국의 책임자들은 단 한명도 자기의 책임이라 말하지 않는가. 한명이라도 말하라, 자신의 잘못임을... 그리도 살고 싶은가. 부끄러운 삶이라도 그렇게 지키고 싶은가. 그 많은 죽음 앞에 살고 싶어 그리도 몸부림 치는가.

세월호 사태는 현 정권의 국정 농단의 정점에 있는 사건이다. 부디 한 오라기의 정의라도 실현 되기를 바란다. 반드시! 그렇지 않다면 21세기의 대한민국의 정의는, 대한민국의 정신은 좌초된 세월호와 함께 또다시 모진 세월 오래도록 수장되고 말 것이다.

<강미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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