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의 나라에서 손님처럼 사는 인생

2017-01-17 (화)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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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칼럼

미국역사의 시작을 언제부터로 보아야 할지가 역사가들 간에는 논쟁이 되고 있다. 옛 미국 교과서에서는 1492년 컬럼버스의 첫 방문으로 시작된 유럽인들의 정착을 시점으로 또는1620년 영국정부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찾아 100여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호 배를 타고 플리머스에 도착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 둘 다 백인우월주의 사상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몇 천 년 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을 무시한 왜곡된 견해이다. 그런데 뒤늦게나마 요즈음 원주민들의 선사시대에서부터 미국 역사의 시점을 찾아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이 나서고 있다.

미 대륙이 몸살을 앓게 한 괄목할 만한 사건들은 1600년대 이후 미 대륙 남서부와 플로리다주에 거주한 스페인인들과 미시시피강 남부 멕시코만에 상주한 불란서인들과 그리고 1770년대에 아팔레치아 산맥 동쪽 대서양연안에 안주하여 13개 주의 식민지를 차지한 영국인들 간의 자리매김 싸움들이다. 주객이 전도된 그들 간의 영토 및 세력 다툼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원주민들이 수난을 겪었다.


1776년 독립전쟁이 승리로 “신세계” 미국이 탄생하였고, 대통령이 선출되는 새 개념의 첫 민주국가를 건립한 백인들의 진취적인 기여는 가히 감탄할 만한 사실이며, 그 이념에 기초하여 민주국가로 성장하여 세계의 지도자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 있어 백인들만이 이 신 세계의 주인이란 착각으로 원주민을 무시하여 고립시키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부터 거의 6-7백만으로 추정되는 건장하고 유능한 원주민 흑인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삼은 일은 역사에 큰 오점이며 지금까지도 원주민과 흑인을 박해하는 “제도적 인종차별 정책”이 계속 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의 지도자로서 세계 모든 이들의 인권보장을 주장하는 미국은, 등잔 밑이 어두운 격으로, 자국 내에서 인종차별이 사실상 제도적인 정책으로 펼쳐지고 있는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미국을 내 나라로 선택한 50년 이민 역사의 우리 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리더십은 인종차별정책 퇴치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남의 나라에 슬그머니 와서 초대 받지 않은 손님처럼 산다”는 수동적인 태도는 예의가 아니다. 책임과 의무를 회피함으로써 자신의 공평하게 대우받을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 되므로, 본의 아니게 인종차별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내 자녀와 손주들이 내가 선택한 새 나라에서 떳떳하게 뿌리를 내고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이민 1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인권평등은 나의 적극적인 참여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500여 년간 흑인들이 겪어낸 슬픈 역사가 있기 때문에 백인우월주의가 우세한 이 땅에서 우리 한인들은 그나마 수월한 이민 생활을 하고 있다.

불편하더라도 나와 내 자손뿐만 아니라 이 땅에 뼈를 묻을 피부색이 다른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의도적으로 그들로부터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며, 그들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태도를 가질 때에 기적 같은 변화가 이루어 질 것이다.

새 나라에서 꿈을 펼치며 한 세상을 살다 떠날 때에 “참 좋았다”라며 떠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축복은 없지 않을까.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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