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혜를 구할 줄 아는 지혜

2016-11-26 (토) 조은숙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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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40세 되는 손위 동료에게 surprise 파티를 해주었더니 굉장히 언짢아했다. 나이가 드는 것이 싫어서란다. 어른을 존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너무 놀라운 얘기였다. 비로소 미국의 첫 직장에서 나를 당황스럽게 했던 젊은이 중심의 사고방식이 이런 거구나 짐작이 되었다. 그때, 현재의 능력과 효율성만 보고 경력 많은 노교수를 매도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어이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나는 생일파티를 받을 때마다 나이를 더 먹는다는 게 기쁘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새해를 맞을 때마다 그만큼 더 지혜로워질 거라는 기대로 감사했다. 내 삶을 통 털어 모아진 지혜보다 더 큰 깨달음을 새해 한해에 얻게 되리라는 체험적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새 TV 덕분에 뒤늦게 한국 드라마에 재미를 붙였다. “그래 그런 거야”의 노부부가 너무 재밌다. 불쑥하는 할아버지의 한 마디 말속에 있는 삶의 지혜가 놀랍고, 차근차근 이르는 할머니의 말 속에는 인간관계의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속에 들어와 살게 된 철부지 손주며느리가 어른들 틈에서 인간관계에 맛들여가면서 어른스러워지는 것이 너무 귀엽다.


지식과 지혜. 젊은이들이 그 차이를 보고 그 가치를 알고 구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정이, 세상이 얼마나 훨씬 평화로워질까 생각해 본다. “나이 먹었다고 다 지혜로운 것은 아니지만 젊은이 중에 지혜로우는 이는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이 모두에게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삶의 경륜이 쌓이면서야 지혜로워진다는 말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아직 삶의 지혜를 볼 수 있을 만큼의 지혜가 없는 젊은이들에게는 노인의 말은 그냥 쓸데없는 옛이야기로만 여겨져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되돌아보면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신지 오래되신 아버님의 긴 말씀들이 이제야 깨달아지고, 어머님의 조용한 눈빛, 염려스러운 한 마디의 의미가 이제야 내 가슴을 치곤하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요새 젊은이들이나 다를 바 없었다는 생각을 한다. 때가 되어야 지혜를 구하게 되고 그때가 되어서야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알아보는 식견이 생기는가 보다. 그래서 나도 내 아들,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수많은 말들을 가슴속에 묻어두면서, 언젠가는 너무 늦기 전에 내 속의 얘기들을 도란도란 주고받을 수 있다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조은숙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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