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열린 뉴욕과 ‘알라딘’

2016-11-1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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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 곳곳에서 백인우월주의가 확산되고 있어 한인을 비롯 아시안들은 걱정이 많다. 최근 롱아일랜드 지역 중고등학교에서는 유색인종 차별적인 낙서가 발견되고 유색인종 학생이 괴롭힘을 당하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 내내 심한 인종적, 종교적 편견을 드러냈다. 지난 8일 선거이후 맨하탄 14가와 유니온 스퀘어 역 벽면에는 수천 장의 포스트잇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 히잡 쓴 당신 예뻐요 ”, “ 뉴욕은 모두에게 열려있어요.”,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다시 일어날 것 ”이라며 뉴요커들은 반이민정책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속에 서로 위로하는 메시지들을 가득 써놓았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포스트잇 한 장 한 장이 특정인종, 종교, 국적에 대한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14일에는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이곳을 찾아 캠페인을 격려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뉴욕데일리 뉴스 기고문에 “ 무슬림이든 이민자든 성소수자이든 누구든지 당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뉴욕주 정부가 앞장서 싸우겠다 ”고 밝혔고 16일에는 증오범죄 신고 핫라인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드 블라지오 뉴욕시장도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초강경 반이민정책에 맞서 “ 뉴욕시 50만 불법체류자를 보호하겠다. ”고 나섰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상인에 의해 미국으로 잡혀 와서 농장에서 혹사당하면서 시작된 역사이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총칼과 전염병균으로 무장한 신대륙 개척자들에게 땅을 내놓으라는 위협을 받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1852년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이 흑인 노예 톰과 그 가족의 비극을 그리면서 미국 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9년 뒤 남북 전쟁이 시작되었고 링컨은 전쟁 중이던 63년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즉 소설 한권이 결국 흑인 노예제를 폐지시킨 남북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지난 8여년간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도 흑인에게 가해진 경찰의 총격으로 인해 수시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일어나곤 했다. 우리가 다시 150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 못산다, 피부색이 다르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종교가 다르다 하여 누군가를 차별한다면 당신은 다양한 인종, 민족이 모여 이룬 미국에 살 자격이 없다.
지난 주 딸아이가 생일 선물로 뮤지컬 ‘알라딘(Aladdin)’ 을 보여주었다. ‘알라딘’ 은 착한 평민 알라딘과 술탄 왕국의 공주 자스민, 램프의 요정 지니의 이야기다. 알라딘과 공주가 하늘을 날아가는 양탄자를 타고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과 구름 위를 나르는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는 순간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배경이 중동 아라비안 왕궁과 마을이니 당연히 알라딘과 공주 두 주인공은 물론 모든 등장인물이 중동사람이다. 실제로 배우 중 상당수가 유색인종이고 뚱뚱한 거구 몸매에 날렵한 몸놀림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지니 역 배우는 흑인이고 손뼉치고 환호하는 관객은 대부분 백인들이다. 그곳에 인종차별은 없고 웃음과 감동뿐이었다.

알라딘은 원래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s), 우리가 어린 시절엔 ‘천일야화(千一夜話)’ 라는 제목으로도 알고 있는 280여편 이야기 중 하나이다. 사랑과 학문, 지혜, 범죄가 총망라된 중동의 구전 문학으로 18세기 초반에 유럽사회에 번역되면서 아랍인 문화와 이슬람 신앙을 알려주었다.


지니 역 배우가 토니상을 수상한 이 유명한 뮤지컬 ‘알라딘’을 같은 뉴욕에 사는 트럼프는? 10살짜리 늦둥이 아들과 손자손녀들은 보았을까?

이제 선거는 끝났고 결과는 정해졌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반대시위를 잠재우고 대국민 화합을 이룰 수 있게 앞장서야 한다. 트럼프 역시 여성혐오 및 이민자와 유색인 차별적 발언이 빚어낸 여파로 미국사회가 혼돈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려면 브로드웨이에서 성황리에 공연 중인 ‘알라딘’을 보는 제스처같은 것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선거 구호처럼 위대한 미국, 강한 미국은 국민이 하나가 되어야 가능하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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