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이 가득한 상자

2016-06-18 (토) 윤혜영 병원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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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앞 달력을 바라보니 벌써 또 6월이다. 그래도 5월이 좋았는데... 얼마 전 6월로 넘어가려고 5월달 달력을 넘기려고 보니 5월 달력의 사진이 너무 좋다. 넘실대는 푸른 바닷물을 안고 가느다란 파도가 흰 선을 그으며 달려와 머무는 장소에 빨간 고깔모자를 쓴 표싯대를 이고 둥그런 그린이 펼쳐져 있는 그림이다.

미시건의 베이 하버 골프장 8번홀이라는 설명으로 보면 바다가 아니고 호수일 듯싶은데 퍼팅 준비하는 골퍼의 코끝에 설치는 바람결에 소금냄새라도 실려 올 듯싶다. 그리고 일렬 번호를 붙이고 하얀 공백으로 남아있는 서른 개의 작은 네모 상자들.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은 이제 게을러 안하면서도 후에 시간이 나면 한꺼번에 하리라고 간단 간단 메모를 해 놓는데 5월은 도대체 어디를 헤매고 살았길 래 그냥 하얀 공간으로 남겨진 것일까….

지난 5월 한 달을 생각해 본다. 다행히도 기억에 남을 불행했던 일도 불쾌하고 허둥대었던 일도 슬펐던 일도 없다. 그리고 각각 독립하여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걱정거리가 생겼어요, 혹은 도와 주세요 하는 급한 전화한통 걸어온 적이 없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던 한 달이 아니겠는가.


아, 그리고 특별히 어머니날이 있었네. 내 생애 최고의 어머니날이었다고 그 다음날 아이들에게 이멜을 보냈었다. 좁다란 아들의 아파트에 초대되어 한 묶음의 튜립이 꽃인 놓인 식탁에 앉아 두 아이가 솜씨를 발휘한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는데 그 어느 최고 요리사의 솜씨가 그보다 더 훌륭할 수 있을 것인가. 라면 한 그릇이라도 거기에 기쁨과 사랑이 들어있으면 최고의 요리라 할 수 있겠지…

다음날은 연로한 어머니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일본식 스시집에서 정종 잔을 비우며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함께 하는 어머니날을 보내게 될 것인가 생각하며 즐겁게 보냈다. 여전히 건재하신 어머니와 하하 호호 웃으며 외식을 함께 할 수 있는 행복.. 얼마나 큰 축복이었나. 그리고 메모리얼 데이 연휴.

온후한 태양아래 뒷마당 한 켠에 일군 야채밭에 모종했던 상추와 깻잎의 첫 수확으로 마치 농군이 된 듯한 뿌듯함으로 친구에게서 얻은 쌈장과 함께 고깃점을 넣고 먹은 참으로 맛있고 좋았던 가족들과의 뒷마당 바베큐. 아직 모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계절이 아닌지라 더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지난 5월은 정말 행복하고 좋은 달이었다. 하얀 공백으로 지나가버린 서른 한개의 네모난 상자들속에 실은 신나고 즐거웠던 일들이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가득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6월, 또 다시 푸른 잔물결이 넘실대는 배경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숲이 우거진 앞으로 길게 뻗어있는 그린, 비슷해 보이지만 또 다른 감동으로 느끼고 싶은 멋진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흰 공백으로 나를 기다리는 서른개의 네모 상자들을 설레임을 가지고 들여다본다. 한개 한개가 기쁨이고 행복이라는 이름의 상자로 남을 것임을 추구하면서…

<윤혜영 병원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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