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머뭇거림의 미덕’

2016-06-17 (금)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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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평화로운 작은 섬마을이 소란스럽다. 20대 초반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잘 아는 마을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성폭행의 계획은 피의자중 한 사람이 경영하는 마을 식당에서 시작되었다. 식사 중에 술을 먹여 의식을 잃게 한 다음, 악한 일을 공모했다.

이 엄청난 성폭행 사건은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불과 한 시간동안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어느 누구도 “이건 아니다. 우리가 이러면 안 된다. 정신 차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라는 말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예전에는 우리가 이렇게 살지 않았다. 쉽게 얻은 답은 현명한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개인 진로문제 문제 하나를 놓고도 머뭇거리며 생각이 많았다. 대학 재학 중 군 입대를 결정할 때 6개월을 머뭇거리며 생각했다. 새벽 기도도 해 보았고, 교회 기도실을 여러 번 찾았다. 그것도 모자라, 밤을 새워가며 길게 반복되는 선배의 연설적 충고를 귀담아 듣기를 즐겨했다. ‘머뭇거림’은 그 당시 지성인의 고상한 미덕이었고 품격이었다. 그 당시의 세상은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워, 가난하고 고단하게 살았지만 신중한 품위는 잃지 않고 살았다.


현대인은 인공지능의 비호같은 수리능력과 컴퓨터의 연산능력 앞에 환호한다. 속도에 중독된 현대인에게 ‘머뭇거림’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런 의문이나 검토과정 없이 내놓는 컴퓨터의 비인격적인 답을 따를 때, 인간에게 다가 올 비극이 무엇인지를 그들은 가늠하지 못한다.

이륙하는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는 막대하다. 파이로트는 할 수 있는 대로 활주로를 빨리 벗어나려고 궁리한다. 파이로트가 뒤에서 밀어주는 순풍을 타고 이륙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항공기는 앞으로 빨리 전진 할 수는 있겠지만, 이륙하는 데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 뒷바람으로는 항공기가 이륙할 때 필요한 양력을 얻지 못한다. 좀 힘들고 느리게 전진해도 앞에서 세차게 부는 맞바람을 맞으며 이륙을 시도해야 푸른 하늘을 향해 사뿐히 떠오른다. 항공기 뿐 아니다. 도약의 삶이 필요한 인간에게도 ‘머뭇거림’의 저항의 힘은 필요하다.

하나님은 욥을 칭찬 헸다. “땅위에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없다.” 시기심 많은 사탄이 대답한다. “욥이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하나님을 경외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사탄은 인간을 보상과 함께 일어서고 넘어지는 존재로 보았다. 무서운 통찰이다.

죄 없이 당하는 억울한 고난이 욥에게 주어진다. 사탄의 의표를 알아챈 욥은 세차게 불어오는 맞바람을 순순히 맞았다. 고난을 통해 머뭇거림의 시련을 겪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욥의 신앙은 높이 도약했다. 욥의 신앙이 보상과 관계없는 것으로 판명되자 사탄은 스스로 물러갔다. 당신이 리더라면, ‘머뭇거림의 미덕’을 잃지 마라.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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