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난해도 우아하게

2016-05-2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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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쇤부르크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라는 책이 순전히 제목이 재미있어 눈길이 갔다. 또 ‘가난한데 우아하게 살아? ’ 하는 자그마한 반발심이 책을 구해 읽게 했다.

내용인즉,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일으킨 세계무역센터 테러는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고 독일 유력지의 편집자로 잘 나가던 폰 쇤부르크를 어느 날 갑자기 실직시켜 거리로 나서게 했다. 그는 유럽의 몰락한 귀족 출신이다. 아, 우아한 가문이긴 하다. 이런 건 돈 주고도 살 수 없다. 18세기부터 영락의 길을 걸어온 가문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작가는 경제적 곤경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유럽 최고의 부유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한다.

망해도 의연하게 사는 법,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기술, 아둔하지 않게 샤핑 하는 법, 가난해진 사람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방법 등의 소제목에서 보듯이 내용도 재미있고 없이 사는 자들에게 작은 위로를 준다.


첫째 그는 의연하게 대처하라고 한다. 오랜 기간 불황 속에 버텨온 세계 경제는 앞으로도 별로 좋아질 기색이 없고 기후변화에 유럽 난민 문제에 지구촌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는 것을 각오하라는 말이다. 우리 모두 예전보다 훨씬 가난해 진다고 볼 때 이러한 상황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법을 빨리 터득해야 한다.

둘째 간편하게 사는 방법이다. 이는 요즘 유행인 미니멀리즘과 일맥상통한다. 버리고 또 버리라는 것. 쓸데없는 물건을 사들이지 말고 짐을 없애고 방을 넓게 쓰라는 것이다. 자동차를 없애면 당장 개스비에 보험비 등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는 금액이 엄청 절약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 다니면 건강에도 좋다.

작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 포기하는 것이라 한다. 부자가 되려는 꿈을 꾸지 말 것,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처방 중 하나가 복권 구입이라고 한다.

사실, 이런 작가의 말들은 그럴 듯 해보이긴 하나 미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공감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미국에 살면서 자동차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한 가. 나만해도 출근시 자동차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면 50분 가까이 걸리니 자동차 없는 출근은 생각할 수 없다. 또 요즘처럼 되는 장사가 없는 미국의 불경기는 ‘아메리칸 드림은 복권 드림’을 맹신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파워볼이나 메가 당첨금이 천문학적 숫자가 되면 복권판매소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친다.

그러나 삶을 보람 있게 해주는 것들은 수중의 돈이 감소한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화려하고 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부담스럽고 맛도 별로 모르겠고 돈이 아깝다. 샌드위치나 김밥이라도 자그마한 까페, 하다못해 햇볕 좋은 공원 벤치에서 먹을 때가 더 맛있고 기분 좋을 때가 있다. 식사값으로 100달러 쓸 일을 10달러로 끝냈으니 ‘돈 벌었다’는 기분도 들고.

물질적인 것과 상관없이 말로 때우는 친절도 있다. 아파트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타인과 인사하기이다. 육중한 현관문을 잡고 뒤에 오는 사람을 기다려주고 물건을 잔뜩 든 사람을 위해 아파트 층수를 눌러주는 등 이런 일들 말이다. 이런 것에는 돈 한푼 안든다.

작가는 아마도 사람의 품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같다. 가난해도 사람의 도리와 의무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아하게 살 수 있다.

출근길 길가 도로에 문 닫는 가게가 늘고 있다. 닫힌 문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다들 어렵구나, 어려워’ 하면서 주위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요즘은 평범한 속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드라마나 영화도 인기이다. 다들 없이 살아도 우아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품위를 최대한 지키면서.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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