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류가 배운 3대 진리

2016-05-23 (월)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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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은 인종 청소를 내걸고 유럽의 유대인 600만 명을 가스실에 처넣어 학살하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인간 도살 역사이다. 사람의 생명을 마구 다루는 잔악 행위는 거의 모든 독재 정권과 호전주의자들에 의하여 강행되었다. 그들에게 인간은 권력 연장이나 패권 야욕의 한 낱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한 의과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어느 가난한 가정이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렸고 부인은 폐결핵 2기이다. 이 가정에 아들 넷이 있다. 장남 역시 결핵으로 죽었고 다른 아이들도 결핵에 감염되어 있다. 그런데 이 부인이 또 임신하였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한 학생이 성난 소리로 외쳤다. “당장 낙태 수술을 시켜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다. “자네는 지금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환경에서 다섯째 아이로 태어난 생명이 악성 베토벤이었던 것이다.

사실 인간을 물질적으로 본다면 참으로 허무하다. 생화학자 돌프 빈더 박사는 이런 재미있는 계산서를 내놓았다. 체중 150파운드의 인간을 물질로 환산한다면 그 값은 겨우 20달러 98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새장 하나를 청소할 약간의 석회와, 못 한 개 정도의 철과, 찻잔 하나 정도의 설탕, 세숫비누 다섯 장의 지방, 성냥 두 갑을 만들 인(燐), 기타 몇 가지의 싼 물질이 나오는데 이것을 몽땅 약방에서 산다면 20달러 98센트면 족하다. 사람은 물질이 아니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신의 선물이다. 히틀러는 정신박약자들을 비생산적 소모자라고 해서 안락사 시켰으나 불치병 환자의 생명도 심신 장애자의 생명도 신이 창조한 존귀한 생명이다. 생명은 아름답다. 갓난아기의 생명도 못생긴 사람의 생명도 피부가 검은 사람의 생명도 똑같이 아름답다. 생명 속에는 성장의 신비가 있고 기회의 샘이 있고 행복의 씨가 있다. 아무도 그 행복과 기회와 성장을 뺏거나 방해할 권리가 없다. 예수는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라고 선언하여 인간의 생명이 전 세계 물질의 총화보다 더 값짐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존귀한 인간은 이데올로기의 종이 되거나 정권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기업주의 생산 수단이나 소위 경제 발전의 도구 이상의 귀중한 생명체이다. 존엄한 생명이 핵 찌꺼기나 화학약품 찌꺼기의 희생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 복지사회란 생명을 아끼고 보호하고 행복하게 성장시키는 사회이며 이토록 귀중한 생명을 잘 간수하기 위하여 교육 정치 경제 종교와 지구촌의 유대가 있는 것이다.

‘생명의 존엄’이란 튼튼한 기초 위에 민주주의도 가능하고 천국운동도 그 의미가 확실해진다. 아름다운 생명, 귀중한 생명을 인식한다면 이 세상도 꽤 살만하며 오늘의 땀도 높은 가치가 있다.

인류가 지난 100년 동안 100회 이상의 분규와 전쟁을 치루며 뼈저리게 배운 세 가지 진리가 있다. 그것은 대립보다 공존(共存)이 낫고, 이데올로기(理念) 보다 사랑이 나으며, 자원보다 두뇌가 낫다는 진리였다.

퍼레이드(Parade) 지는 룻 시버드(Ruth Sivard) 교수의 저서 ‘세계의 군사비’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전재 보고하였다. (1) 2차대전 후 세계는 핵무기 개발을 위하여 4조 달러를 투입했다. (2) 세계가 비축한 핵무기는 1만 6,000 메가톤으로 전 인류를 열두 번 죽일 수 있는 화력이다. (3) 아직도 이 지구에는 인구의 4분의 1이 배고픈 채 잠들고 있는데 세계의 연간 군사비는 8천억 달러이다. (4) 세계 전체로 따지면 43명 중 1명이 군인이고 1천 3십 명 중 1명이 의사이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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