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사꾼에 불과한 예술인

2016-05-21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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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거짓을 한 번도 안 짓고 사는 사람은 없을 거다. 신이 아닌 이상, 일상에서의 거짓은 악의가 아닌 선의에서도 어떤 경우, 지을 수 있는 상황이 있다. 허나, 악의의 거짓은 자신과 가족과 자신이 속한 단체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다. 거짓을 한 번 했을 때는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것이 상습화될 때 문제가 된다.

거짓보다 더 한 수 위의 사기는 사실을 속여서 사람을 착오에 빠지게 하여 피해를 주는 경우에 해당된다. 요즘 한국에선 가수와 화가로 잘 나가던 조영남(71)씨가 자신의 화투그림을 100%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니라 90%는 남이 그려주고 10%정도만 자신이 하고 본인의 싸인을 하여 비싸게 팔아먹은 것이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것도 한 점이 아니라 300여점에 달한다. 본인은 대작(代作)한 것은 하나도 안 팔았고 또 대작의 경우 사기가 아닌 관행이라 하는데, 과연 그 말을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지. 그러나 검찰은 조영남씨에게 사기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펼치고 있다. 팔렸건 안 팔렸건 70평생 잘 나가던 조씨의 얼굴에 먹칠이 가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뉴욕에 사는 세계적인 한인조각가 존배(79)교수의 작업실을 우연히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존배 교수는 철사조각을 용접해 이어서 기하학적이고 아름다운 곡선을 통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비평가들은 그의 조각은 동양의 정신을 서양의 조형어법에 대입시킨 초월적 추상작업이며 철사에 바흐의 음악을 담아냈다고도 평한다.

그의 작업실은 온갖 가늘고 굵은 철사들로 널려 있고 옆에는 용접봉이 여러 개 있다. 어찌 보면 고물철물상을 연상시킨다. 그의 손은 철사용접으로 인해 성한 데가 없다. 그는 한 개, 한 개의 철사를 모두 용접시켜 커다란 작품을 완성해 낸다. 아무리 큰 작품이라도 대작(代作)이란 상상 할 수도 없다. 진정한 예술인이요 조각가다.

조영남씨가 돈이 없나, 집이 없나, 왜 그런 사기 같은 수법으로 돈을 모으려 했을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조용남씨 사건이 인터넷에 오르자 댓글이 이렇게 달린 것이 있다. 자기 논리에 도취되어 있는 건방진 자. 이 자로 인해 사회의 규법(규범)이 다 무너졌다. 세상을 어지럽게 한 자. 이혼과 방종을 사회에 뿌린 자라고.

우리나라 작가 중 작품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화가 중 하나에 이중섭이 있다. 그가 그린 황소 그림은 2006년도에 35억에서 45억의 가격대에 경매에 오르내렸으니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비싸져 있을 게다. 이렇게 유명한 화가도 생애는 너무나 불운했다. 의식주를 해결 못하고 종이를 살 돈이 없어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미술평론가들은 이중섭의 붓 끝에 담겨 있던 두 가지를 얘기한다. 가족과 소다. 일본으로 떠나 보낸 가족과의 다시 만남을 꿈꾸며 아비 된 중섭은 소달구지에 타고 있는 가족을 그려 아들에게 보낸다. 시인 구상은 중섭 처럼, 그림과 인간이, 예술과 진실이 일치한 예술가를 자신은 못 보았다고 말했다. 화가라면 이래야 되는 것 아닌가.

1960대 이후 팝 아트(Pop Art)가 판을 치며 그림이 예술이 아닌 장사로 변해버린 요즘이지만 그래도 창작물엔 작가의 혼과 숨결이 느껴져야 하는 것이 예술이다. 가수라면 모른다. 남의 곡으로 평생을 먹고 살수도 있으니. 조영남씨는 자신의 작곡보다는 남의 곡, 탐 존스가 부른 딜라일라 같은 것으로 평생을 먹고살고 있질 않나.

그러나 진정한 화가라면 아니다. 슬픈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짧았던 37세의 가난의 생을 살면서 그린 그림이지만 혼이 담긴 그의 작품은 지금 수천만, 수억달러의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니 그렇다. 예술의 혼을 돈으로 사서 팔려했던 조영남! 그는 진정한 화가도 진정한 예술인도 아닌, 장사꾼에 불과할 뿐이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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