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검은 사제들, 그리고 바흐

2016-05-14 (토) 강미라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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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가톨릭 사제들의 구마 행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다. ‘구마’ 라는 것은 사람의 인격 안에 들어간 악한 영을 내쫒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영화에는 종교적, 심리학적, 철학적 등등 여러 가지의 감상 포인트가 있었는데, 음악을 업으로 삼고 사는 나에게는 구마 사제들이 18세기 독일의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칸타타를 틀어놓고 구마 의식을 진행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칸타타는 세속 칸타타와 교회 칸타타로 나뉘는데, 평생을 교회 음악가로 살았던 바gm는 무수한 교회 칸타타를 작곡하였으며 그 중 200여곡이 현존해 있다. 교회 칸타타는 예배에 사용되었던 음악이었으므로 성경적 내용을 혹은 성경구절을 가사에 담고 있으니 당연히 악한 영들이 싫어할 만하다.

그러나 다만 가사가 가지고 있는 힘 만일까? 바흐는 신앙심이 매우 깊은 루터 교인이었다. 마태 수난곡을 작곡할 당시 깊은 영성에 빠져들었던 그의 일화는 아내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저서를 통해 잘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그는 다수의 교회음악 외에도 간간히 귀족들을 위한 세속음악을 쓰기도 하였는데 그 중 첼로를 위한 곡으로 세기의 작품 무반주 조곡이 있다. 조곡 이라 함은 춤곡들의 모음을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극히 세속적인 목적의 형식이라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무반주 조곡을 연주 할 때마다 나는 깊은 영성을 느끼곤 한다.


세속을 떠나 수도원에서 생활을 하던 당대의 수도승들에게 바흐의 이런 곡들은 인간감정의 표현 등에 지나치게 집착한 ‘거룩치 못한’ 음악으로 여겨졌을지는 모르나 나는 이곡을 통해 무한히 영원한 어떤 곳에 다다르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지극히 인간됨과 신성의 만남을 느낀다고 할까. 이는 어쩌면 바흐가 지니고 있던 깊은 신앙심이 곡의 형식을 떠나 소리를 통해 전달이 되어져 오는 것일 것이라 느낀다. 물질과 육의 세계를 넘어선 무엇을 향해 우리를 끌어 올리는 힘, 초월자와 맞닿게 하는 그것, 아마도 이것이 ‘음’의 힘이자 본질일지 모른다.

영화에서는 바흐의 칸타타가 흘러나오며 동시에 어둠이 내렸으나 여전히 불야성인 도시를, 상처받고 지친, 화려한 도시를 위에서부터 천천히 어루만지듯 비추어 준다.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난립하는 빌딩 사이를 비행하는 천사의 시선을 통해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허나 물질숭배, 힘의 숭배, 끝없는 탐욕. 세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이 강력한 악의 힘 앞에 바흐의 음악은 슬프도록 무력하게 들린다. 마치 이 온 우주를 창조한 신의 본질을 '사랑’ 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력하게 보이듯.

그렇다. 거대한 악 혹은 힘에 비추어 진실이라던가 혹은 사랑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역시 종종 매우 무력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가 믿는 것은 진실은 승리 할 것이다 라는 식상해져 버린 구호 아닌가. 그것을 아직도 믿고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거짓이 들어 왔을 때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신성한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숭고한 선율이 흘러올 때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우러러 보게 하는, 우리 안에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순응성 때문일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 안에 이와 같은 마음이 있는 이상 그것들로 인해 악을 몰아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세월이 흘러감에도 도저히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강미라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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