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멀리건과 컨시드!’

2016-05-16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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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5월이다. 골프장 잔디는 푸르다. 잔디뿐 아니다. 온 천지가 푸르다. 골퍼들에겐 더 없이 좋은 때다. 연중 가장 골프하기 좋은 계절이다.

골프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걷는 것’이다. 서로의 실력을 배려해 ‘핸디캡’을 부여한다. 첫 티 박스에서 시작해 서로의 길을 향해서 간다. 푸른 페어웨이를 걸으며 동반자와 대화를 나눈다. 칭찬과 격려도 해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늘 상대를 이기고 싶은 것이 바로 골프다.

골프는 언제나 골퍼에게 희로애락을 준다. 워터해저드로 날아간 공이 물수제비를 뜨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OB(Out of Bounds)가 날 공이 나무를 맞고 페어웨이로 들어오기도 한다. 내리막 롱 퍼팅이 들어갈 때도 있지만 짧은 버디 퍼팅을 놓치기도 한다. 잘 맞은 아이언 샷이 벙커에 빠지기도 하지만 벙커 샷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갈 때도 있다. 이렇게 웃고 울다보면 어느새 18홀이 아쉽게 지나가는 것이 골프인 셈이다.


‘멀리건(mulligan)’은 최초의 티샷이 잘못되었을 때 동반자들이 벌타 없이 다시 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물론,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첫 홀에서만 허용되는 것이 관례다. 첫 홀을 잘 관리해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한인사회에서도 주말 골퍼에겐 대개 ‘멀리건’을 준다. 첫 홀은 더블보기 이상을 해도 그냥 보기로 기록해주기도 한다. 첫 홀에서 파를 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모두 파로 기록하기도 한다. 일명 ‘일파만파’다. 또는 ‘PIPAR 룰’이라고도 한다. 첫 홀에서는 피 본 사람도 파로 인정해준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홀 당 내기를 할 때는 기록과 내기는 별도다.

싱글골퍼들은 ‘멀리건’을 적절히 활용할 때도 있다. 실력 차가 큰 동반자를 배려해 전, 후반에 각각 한 개씩 미리 허용해 주는 아량(?)을 베푸는 것이다. 문제는 시도 때도 없이 ‘멀리건’을 달라며 ‘징징(?)’되는 골퍼다. 심지어는 스스로 ‘멀리건’을 외치고 티샷을 다시 하는 몰지각한 골퍼도 있다. 이런 습관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동반자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컨시드(Concede)인 일명 ’오케이(OK)'도 마찬가지다. 골프에서 ‘OK'의 반대말은 바로 ’마크(Mark)'다. 컨시드를 줄 수 없으니 한 번 더 치라는 의미다. ‘OK를 주기에는 애매한 거리’가 ‘우정이 금이 가는 거리’로 표현되는 이유다.

흔히 ‘OK'는 볼이 홀컵 가까이 붙었을 때 한 번의 퍼팅으로 홀인을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동반자들이 함께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볼이 홀컵에서 가깝지도 않은 데 무조건 ’OK'를 줘 버리는 골퍼도 있다. 사실 ‘OK' 거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통상 볼과 홀컵간 거리가 퍼터의 그립부분을 뺀 샤프트의 길이 이내다. 때론 그 홀에서 스코어가 안 좋은 골퍼에겐 조금 먼 거리라도 ’OK'를 주기도 한다.

문제는 다른 동반자는 전혀 줄 마음이 없는데 제 마음대로 선심을 쓸 때다. 이럴 때는 라운딩 분위기가 어색해 지기 일쑤다. 동반자의 불평이 뒤따르기도 한다. 또 다른 문제는 동반자에 따라 ’OK'의 기준이 달라질 때다. ’누구는 OK고, 누구는 마크냐?‘며 언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무엇보다 마무리를 끝까지 하고 싶은 상대방에게 짧은 거리라고 해서 함부로 ’OK'를 주는 것은 오히려 결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더블파 이상을 기록하는 상황이라면 끝까지 퍼팅을 하기보다 먼저 볼을 집어 드는 것이 예의다.

골프는 ‘룰’을 중요하게 여기는 스포츠다. 그렇다고 너무 지나치게 ‘원칙’만 강조하면 재미가 반감될 수 있다. 룰은 지키고 유쾌함은 즐기며 약간의 반전이 필요할 때는 배려의 손길도 내밀자. 그러면 자신은 물론 동반자 모두가 잘 어우러져 모처럼의 라운딩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게다.

골프 시즌을 맞아, 한인골퍼 모두가 스스로에게는 보다 엄격하게, 동반자에게는 조금 더 여유롭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멋진 라운딩을 하면 좋겠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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