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을 사랑한 ‘민족대표 34인’ 선교사의 유훈

2016-05-12 (목)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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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 기념 ‘LA 특별전’ 내달 곳곳 펼쳐

▶ 3.1운동 일제 만행 세계 알려, 정운찬 전 총리 7일 강연도

한국을 사랑한 ‘민족대표 34인’ 선교사의 유훈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4인으로 꼽히는 스코필드 선교사는 현충원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다.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는 열아홉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팔과 왼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기차역에서 내린 스코필드 선교사는 제암리까지 50리 길을 불편한 몸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3.1만세운동 직후 일본 군경이 교회에 주민을 끌어들여 학살하고 불에 태운 현장을 목격하고 직접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국제 학계에서 이미 수의학자로 널리 알려졌던 스코필드 선교사의 글을 통해 만행은 세계 곳곳에 역사로 새겨졌다.

스코필드 내한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지난 12월 영국에서 소중한 자료를 발견했다. 스코필드 선교사가 당시 영국 최대 어린이잡지이던 칠드런스매거진(Children’s Magazine)에 기고한 칼럼이었다.


한국이라는 머나먼 땅에서 어린이들이 만세를 불렀다고 고문 당하고 죽어가는 이야기가 아이들의 어투로 담겨 있었다. 수많은 스코필드 선교사에 대한 자료 중의 하나이지만 아동 잡지를 통해서도 한국 민족의 고통을 증거하려던 그의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독립선언문 작성 당시 ‘34번째 민족대표’로 손꼽히는 스코필드 선교사는 현충원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다.

‘스코필드 박사 LA 특별전시회’가 6월1일부터 남가주 일대에서 이어진다(본보 5월11일자 보도). 우정의 종각(1~7일)과 윤 스페이스(4~12일) 그리고 한인세계선교대회가 열리는 아주사대학교(6~10일)에서 스코필드 선교사의 유훈을 접할 수 있다.
한국을 사랑한 ‘민족대표 34인’ 선교사의 유훈

기념행사도 마련된다. 간담회와 음악회가 아우러진 ‘토크 앤 콘서트’가 롤랜드하이츠에 위치한 남가주주님의교회(3일 오후 8시), LA새생명비전교회(4일 오전 5시20분), 토랜스조은교회(5일 오후 2시)에서 각각 열린다. 7일에는 기념사업회 회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사진)가 한인세계선교대회를 찾아 ‘한국을 치유한 스코필드 박사’라는 제목으로 강연할 계획이다.

스코필드 선교사는 일제의 암살 기도와 탄압 끝에 캐나다로 돌아갔다가 195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선교사는 당시 가난한 중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국제정치와 경제를 논하며 멘토링을 자처했다. 정운찬 전 총리와 김근태 국회의원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영국 출신 이민자로 지독한 가난 속에서 소아마비를 앓아가며 공부했던 스코필드 선교사는 한국의 미래를 이들 총명한 청소년에게 걸었던 것이다.

스코필드 선교사는 생전에도 세계적인 학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쥐약을 이용해 혈액응고제를 만든 것도 그의 업적이다. 그는 이런 위치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한민족을 돕는데 최대한 활용했다. 소천할 때까지 매일 한 시간 씩 편지를 쓰며 세계 곳곳의 지인과 지도자들에게 헌금을 부탁했다. 이에 감동한 미국 수의학계는 아예 공문으로 스코필드 선교사를 위해 도네이션을 당부했을 정도였다.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YMCA 건물을 복구하려 애쓰던 시절의 일화가 있다. YMCA 총무를 지낸 전택부 선생이 윤보선 대통령에게 지원을 부탁하고 돌아와 병상에 누워 있는 스코필드 선교사에게 보고를 했다.

“대통령께서 뭐라고 하던가?” 스코필드 선교사의 질문에 전택부 선생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 얼마나 후원하신다고 하시던가?” 다시 선교사가 물었다. “돈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전 선생의 답변에 누워 있던 스코필드 선교사가 일갈했다. “돈 없는 사랑, 사랑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것은 나누지 않고 말로만 떠드는 사랑을 지적한 것이다.

스코필드 선교사는 임종을 앞둔 시간에도 선교헌금을 꼬박꼬박 베개 밑에 모아 두었다. 그가 소천한 뒤 남겨 준 돈이 2,500달러. 당시로서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고 YMCA를 다시 세우는데 크나 큰 힘이 됐다.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인 한국고등신학연구원 원장 김재현 박사는 스코필드 선교사가 끊임없이 “약자에게 나누어라. 그리고 한 알의 밀알이 돼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통일, 더불어 사는 삶, 한민족과 해외 동포, 이런 과제 앞에서 스코필드 선교사는 우리가 공유하며 배우고 좇아 갈 아주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모범을 전할 소중한 통로입니다.”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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