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탈북 고아들 돕는 ‘코리안 쉰들러’

2015-03-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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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명 탈북 성공… 인권실상 전세계 알려

▶ LA 집회 “북한 선교 양지로 나와야” 강조

■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


얼마 전 MBC TV방송을 타고 소개된 미향이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홉 살 난 작은 여자 아이가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와 생이별하고 북한을 탈출했다. 중국을 가로지르고 동남아시아 밀림을 거쳐 서울로 들어가는 기나 긴 길은 공포와 외로움 그리고 눈물로 가득 찼다.

미향이가 지난한 여정에서 소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힘은 ‘아빠’와의 전화 통화다. 진짜 아빠가 아니라 탈북을 돕는 후원자다.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다. ‘아빠’와 만난다는 생각 하나로 지치고 두려운 발걸음을 이어갔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듯 한국과 미국에서 방영됐고 시청자들은 새삼 충격에 빠졌다.


천안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는 김 목사는 지난 2000년 한 여성의 탈북을 지원하고 나섰다. 탈북자 출신 목회자 1호인 아내 박에스더 목사다. 중국에서 사역하다 만난 사랑을 이루려고 시작한 일이 거대한 넝쿨처럼 커졌다. 지금까지 400여명이 그의 도움으로 탈북에 성공했다.

갈렙선교회의 사역은 뉴욕타임스, CNN, AP, 영국 미러지, 일본 NHK 심지어 중동 알자지라 방송 등 세계 미디어를 통해 소개됐다. 미국의 소리(VOA)는 지금도 매달 정기적으로 그와 연락하며 기사를 싣고 있다. 국제 언론은 김 목사에게 ‘코리안 쉰들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구한 독일인 쉰들러에 빗댄 것이다.

조선일보가 그와 함께 제작한 다큐멘터리 동영상 ‘천국의 국경을 넘다’는 탈북자의 실상을 온 세상에 알리는 본격적인 계기였다. 이 작품은 에미상 후보에 세 번이나 올랐고 책으로 출판돼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교재로 채택됐다.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탈북 정보가 공개된다는 거지요. 하지만 그런 것은 북한도 다 알고 있습니다. 갈렙선교회는 북한 내부 실정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외국 언론사 기자들이 자주 찾아와요. 그 만큼 실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김 목사는 은혜한인교회와 새생명비전교회에서 집회를 갖고 탈북자 사역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이 자리에서도 북한 선교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제 여론을 불러 모으는 차원으로 사역이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만 북한 선교단체가 100개가 넘어요. 그런데 정작 무슨 일을 어느 정도 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비밀이라고 쉬쉬하죠. 그러다 보니 왜곡과 거짓, 오해가 생깁니다. 그리고 북한 선교와 탈북자 사역의 중요성이 확산되질 못해요. 결국 물이 새는 누수가 큰 셈이죠.”

미국이 4년 전 북한 고아 입양 관련법을 통과시키고 유엔이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탈북자 현황이 공개되면서 거둔 열매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북한 선교는 차세대를 목표로 집중할 필요가 크다고 덧붙였다.


“탈북 지원 사역을 고아들에게 집중할 계획입니다. 자칫 거리를 헤매다 죽을 수 있는 어린이들을 생명력 넘치는 그리스도인으로 키워야 해요. 아이들은 화합의 주역이 될 겁니다. 통일된 후 북한으로 돌아가 정비소를 차리고, 미장원을 열면서 억압에 찌든 주민들에게 맑은 물이 될 수 있어요.”

아직 세상의 영향을 덜 받은 열 살 이하의 아이들에게 생활 속의 신앙을 심어주면 통일 한국에서 전도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고아를 탈북시키려면 비용이 훨씬 많이 듭니다. 어른이 따라야 하고 시간도 더 걸리죠. 또 한국에 와서도 고아원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이 아이들은 고아원이라면 치를 떱니다. 겨우 한국에 왔는데 다시 고아원에 가야 한다니까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는 차라리 죽겠다고 하더군요. 북한 고아들을 데려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앙으로 양육하는 시설이 꼭 필요합니다.”

갈렙선교회의 사역이 세상 언론에는 널리 보도되지만 정작 교회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김 목사는 안타까워했다. 그나마 ‘우리도 하고 있다’는 반응을 듣기 일쑤라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효율성을 계산하는 것도 헛됩니다. 그때그때 주님께서 맡기신 생명을 구하는 게 가장 시급할 뿐이죠. 그리스도인들이 나서 조금씩만 보태면 됩니다.”

문의 (213)800-2500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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