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궁 속의 제 갈 길

2014-10-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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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면서

▶ 강신용

육천미터 하늘에서 땅 위를 내려 본다. 흑백 사진 같은 땅 위로 선들이 선명하다. 흰 선은 산길이고 검은 선은 물길이다. 겨우 수천미터 위에서 그 잘난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조지아에서 공부하는 아들놈을 보고 왔다. 갈 때는 머릿속에 자나 깨나 그 놈 걱정뿐이었는데 곰곰 생각하니 그 놈의 팔자에 역마살이 끼었나보다.

혹시 우리 사주팔자에 바코드가 찍혀 있나 걱정한다. 백화점에 널린 수많은 상품들이 자신의, 자신을 위한 바코드로 자신을 품고 있다. 기계로 찍힌 유별난 암호도 해독기에 들어가면 고스란히 자신을 노출한다. 출생의 비밀과 이름에 걸 맞는 값어치까지 속속들이 밝혀지는 것이 바코드의 팔자소관이다. 구글이라는 컴퓨터 회사의 목표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고 한다. 혹시라도 창조주께서 만드신 탄생의 비밀이 탄로 날까 걱정된다.

어머니는 매년 초에 토정비결을 보았다. 눈으로 보고 읽는 길흉화복 일년 신수가 하나님 말씀보다 더 믿음이 갔나보다. 미력한 인간이 잘 먹고 잘 살아보자고토정 선생의 비책에 기대는 것이다. 토정비결의 점괘는 매년 비슷하다. 여름에는 물조심, 가을이면 불조심, 사람과는 구설수에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인간은 땅의 자식이고 땅은 하늘 밑에 있으니 토정은 미약한 인간을 미신처럼 가르치고 있다.


너나없이 한 번쯤은 팔자타령을 한다. 모든 사람들은 사주팔자대로 산다고 한다. 누구나 팔자 한 번 고쳐서 잘 살고 싶어 한다. 흥부같이 팔자 한 번 제대로 고치는 경우는 복권이 최고다. 아니면 시집 장가 잘 가서 신데렐라가 되는 것도 방법이다. 흥부 집 제비한테 선을 베풀어 부자가 되듯이 현대에는 친구를 잘 둬야 팔자를 고칠 수 있는 것 같다. 사주에 없는 팔자 덕에 추풍낙엽처럼 질 때 지더라도 별처럼 왕처럼 살고지고 싶어 한다.

피케티의 경제학이 유행이다. 조상 덕에 새끼들도 자손대대로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이 피케티 교수의 이야기다. 하버드 대학생의 부모는 미국 최상위 2% 소득층이라고 한다. 똑똑한 자식이 돈 많은 부모까지 두었으니 거칠 것이 없는 계층이다. 아들에게 좀 미안하다. 보스턴으로 못 가고 애틀랜타로 간 것은 대물림을 못한 탓이다. 팔자는 조상 따라 간다고 피케티 교수는 단언한다.

도사를 만나러 열 시간을 운전했다. 동부의 프리웨이는 울창한 산림 속에 묻혀 있었다. 뉴저지에 사는 용하다고 소문난 김 도사를 만나러 밤길을 열 시간이나 달렸다. 팔자 한 번 짚어보려고 몸이 비틀리고 다리가 저려도 은근과 끈기로 참고 참으며 길은 외길 숲길을 달렸다. 하마터면 졸다가 황천에 먼저 갈 뻔도 했다.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고 도사 앞에 앉으니 초라한 몰골만큼 점괘가 나왔다.

옛날에 어머니가 말하던 토정비결과 비슷한 “하지 말라” “조심해라” 괘와 너무나 닮았다.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멀었다. 장장 열다섯 시간이 걸렸으니.

대낮의 프리웨이는 출구의 연속이다. 한 번쯤 exit하고 싶은 숱하게 많은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보지 못한 식당 이름하며, 아름다운 공원과 호수들이 자랑하듯 줄지어 지켜보고 있다. 이런 곳에 살고 싶은 충동이 든다. 뭔가 새로운 것이 대한 강렬한 욕구가 생긴다. 모두가 눈요기뿐이지만 머릿속에 요상하게 춤추며 지나간다. 갈 길이 멀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떠나는 것이라 했던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계기판의 연료통이 빌 때까지 달린다.

산티아고 순례 길은 800킬로라고 한다. 야고보의 무덤까지 순례자처럼 걸어서 한 달이 걸리는 길을 미니밴으로 다녀왔다. 무뇌자의 심정으로 두리번 두리번 경찰차를 조심하며 용하다는 도사를 만나고 왔다. 손금에 쓰인 인생길을 묻자고 두둑하게 복채를 내고 왔다. 아직도 제 갈 길을 못 찾고 있나 보다. 길은 외길 한 길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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