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즙삼채의 이박삼일

2014-09-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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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가면서

▶ 강신용

아지랑이가 너울너울 하늘 따라 올라간다. 차창 밖 지평선 위로 사막의 열기가 따갑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떠나는 이박삼일 버스여행이다. 몇 시간을 달려도 사막의 여름은 차창 밖을 맴돌고 있다. 스쳐가는 철조망 너머로 조슈아 트리가 모래를 뒤집어쓰고 외롭게 서있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선지자 여호수아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서 조슈아 트리라고 부른단다. 낮에는 아지랑이와 친구하고 별빛 속에 깨어나 지나가는 길손들을 조용히 배웅한다.

회전초가 찻길 따라 구른다. 공처럼 둥그런 건초더미가 바람 따라 이리저리 정처 없이 구른다. 한 땅에 살면서 어쩌면 그렇게 조슈아 트리와는 다른 모습으로 여행객을 맞을까. 회전초는 영어로 텀블위드라고 부른다. 뿌리를 포기하고 물 찾아 희망 찾아 천리를 방황하는 잡초라고 한다.

화씨 145도는 섭씨로 몇도 일까? 섭씨 62도에 한 시간만 노출되면 살가죽이 타버리는 죽이는 온도이다. 베이커라는 작은 마을 가운데 5층 높이의 온도계가 상징물로 우뚝 서있다. 그 동네 최고 온도를 기념한 것이라고 한다.


관광버스가 마을에 도착하니 이곳저곳에 물웅덩이가 보였다. 사막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스콜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말라 죽고 타 죽을 것만 같은 145도의 마을에 신의 섭리로 소나기 웅덩이를 이곳저곳에 만들어놓았다. 베이커는 시원한 85도(?)로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다.

확 트인 앞좌석에 안전벨트가 없다.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다. 버스가 아래위로 구르면 으레 안전벨트부터 묶는데… 버스에 안전벨트가 없다니 두리번거리며 생명줄을 둘러본다. 마음속 한편으로 졸지말자 자지말자 안전을 다짐한다. 창졸지간에 눈 구경하려다가 명줄을 내려놓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독립기념일 라스베가스로 가는 이박삼일 사막길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만명의 돌서방이 브라이스 캐년을 지키고 있다. 바람과 구름과 태양아래 계곡은 말없이 묻혀 있다. 눈 아래 보이는 캐년 속 돌서방들은 청솔나무들과 가족처럼 다정해 보인다. 비바람에 떨어져 나간 역사의 발자취가 발아래 가득하다. 눈보라가 몰아치면 하얀 소복단장으로 수만의 장정들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가이드가 귀띔한다. 멀리 한길 따라 젊은 발걸음이 초록의 생명과 빨간 죽음의 어우러짐 속에 장엄한 자연에 동화되어 가고 있다.

여행이란 휴식은 짧고 고생은 길다고 한다. 여행 중에 삼식이 노릇은 확실히 했다. 찍고 먹고 배설하는 것이 여행의 삼박자라고 하는데 삼시 세끼는 확실히 챙겼다. 입은 즐거운데 배가 고생하는 것이 먹거리 문제이다. 한국 식당의 맛없는 국이랑 몇 가지 반찬에 불만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잘 자고 잘 먹고 값싼 여행이 고마울 뿐이다.

자연은 말없는 스승이다. 땅과 하늘과 생명이 모두 자연 속에 안겨 있다. 길 따라 마음 따라 객지를 돌다보면 세상은 넓고 자연은 너무나 신기하다. 사막 길을 지나서 자이언 캐년과 브라이스 캐년을 보았다. 긴긴 세월동안 하늘의 물기둥이 땅 위를 지나간 역사의 모습들이 자연과 잘 어우러진다. 세월은 갈 길로 가라고 말없이 가르친다.

물같이 돌같이 살라고 캐년들이 가르친다. 일즙삼채면 어떤가. 건강하면 됐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치 말고 살라고 속삭인다. 긴 여운이 여행 뒤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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