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신건강 문제에 교회 적극 나서야

2014-08-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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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카운티 정신건강 세미나

▶ 남가주 한인 자살 연 100명, 노인 60%“우울증 경험” 심각, 전화 한 통이면 살릴 수 있어, 목회자의 상담·치유사역 중요

정신건강 문제에 교회 적극 나서야

LA카운티 정신건강국 안정영 코디네이터(앞줄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가 빅미션에서 세미나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사진을 찍었다.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지난 11일 자살했다. 항상 긍정적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던 그의 연기는 세계의 많은 팬들의 심정을 어루만졌다. 대표작인‘굿모닝 베트남’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 ‘굿윌 헌팅’은 모두 삶의 소중함과 인생의 참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도 우울증의 함정을 끝내 헤쳐 나오지 못했다. 따뜻하고 밝은 연기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그였기에 자살소식이 주는 충격은 더욱 크다. LA타임스는 이례적으로 인터넷 페이지 전면을 그를 애도하는데 할애했을 정도다.

한국은 먹고 살만한 나라 가운데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1위를 매년 놓치지 않는다. 게다가 노인 빈곤율도 최고 수준이다. 행복수치는 바닥을 헤맨다.


미주에 이민 와 사는 한인은 어떨까? 한인사회의 정신은 건강한가? 과연 한국과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사정이 다를까?

“불행하게도 한인의 정신건강 상태는 아주 나쁘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2012년의 경우 LA 코리아타운 지역 안에서만 34명의 한인이 자살을 했습니다. 한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훨씬 넓고 다양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크게 늘어날 거예요. 더구나 정식으로 집계된 자살 건수만 이 정도니까 알려지지 않은 자살까지 합치면 우리 예상을 아주 뛰어넘을 수도 있어요.”

LA 카운티 정신건강국(Los Angeles County Department of Mental Health) 안정영 코디네이터는 한인 특유의 체면문화로 쉬쉬 하는 경우까지 고려할 때 이민사회의 정신건강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남가주 한인 밀집 거주지역이 풀러튼, 어바인 등 오렌지카운티와 다이아몬드바, 로랜하이츠 등 LA 동부지역, 밸리와 샌디에고 등으로 광활한 점을 감안하면 한해 자살하는 한인이 100명 선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캐나다와 남미를 포함한 이민사회 전체로 대상을 확대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한인들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으며, 그 중에서 극단적 선택을 내리는 한인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미국인 중 정신질환을 겪은 사람이 네 명 중에 한 명 꼴입니다. 정신건강은 결코 머나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라도 한 번쯤 마음의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거죠. 가족단위를 상정하면 거의 모든 가정에서 정신건강의 빨간불이 켜졌다고 말할 수 있어요.”

안 코디네이터는 한인 노인의 경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A 카운티 정신건강국이 밝힌 통계에 따르면 노년층 한인의 무려 6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했거나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이민생활의 와중에 던져진 노인의 정신적 타격과 방황이 얼마나 심한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게다가 30년 이상의 이민 연조가 쌓인 이민 1세의 상당수가 노인 연령에 접어드는 상황이어서 아무도 쉽게 ‘나는 아니다’고 장담할 일이 아니다.

지난달 31일 안정영 코디네이터는 두 번의 정신건강 세미나를 진행했다. 오전에는 미주평안교회, 저녁에는 빅미션 선교회에서 모임을 인도했다. 모두 목회자와 장로, 집사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였다.


“멀쩡하게 교회의 주중 집회에 나와서 남을 위해 중보기도를 열심히 하던 안수집사님이 다음날 자살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전해 준 사례죠. 목사님도 충격을 받아서 진지하게 원인과 대응방법을 의논했어요. 또 아침에 고등학생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가 목을 맨 아버지도 있습니다. 고급 주택가에 살던 중년 한인이었죠.”안 코디네이터는 ‘전화 한 통’이면 죽을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국 응급팀이 즉각 나서 상담과 치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한인사회에서 교회 지도자는 아주 중요해요. 목사님과 장로님 등 리더들이 정신건강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먼저 세미나를 통해 교육을 받고 정신건강국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도움과 교인을 연결하는 통로가 돼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밀을 지켜주고, 마음을 열고 상담할 수 있도록 교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입니다. 걸핏하면 서로 정죄하는 교회일수록 정신건강 문제가 깊게 곯을 수 있습니다.”

문의 (213)738-3446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walkingwith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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