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황 영성의 뿌리는 ‘기쁘게 살아라’

2014-08-12 (화)
크게 작게

▶ ■ 차동엽 신부, 성토마스 성당 특강

▶ 신학교 입학 때 할머니 말씀, 어떤 상황에도 개의치 않는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행복’, 방한 앞 빈자의 성자 조명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알려줬다. 하늘나라가 바로 그들의 것이라는 사실도 가르쳤다. 교회가 약한 사람을 버린다면 이미 존재의 이유를 잃은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14일 한국을 방문한다. 교황에 즉위한 뒤 첫 아시아 방문지를 한국으로 결정했다. 순교자를 축복하고 분단국가의 아픔을 위로할 계획이다. 남미 출신인 교황의 서민적이고 검소한 삶과 부패 및 사회악을 향한 단호한 입장은 전 세계에서 존경을 모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추구한다. 교황은 교황청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반드시 벽을 향해 앉는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 순간 그에게는 식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가난한 자’이다.


지난 4일과 5일 남가주에 위치한 성토마스 한인천주교회(주임신부 김기현)에서 차동엽 신부의 특강이 열렸다. 차 신부는 이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쁨의 영성’이라는 주제를 들고 나왔다. 인천 가톨릭대 교수이자 미래사목연구소장인 차 신부는 ‘무지개 원리’ ‘잊혀진 질문’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가톨릭 신자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제다.

“교황의 할머니 로사는 맏손자가 예수회에 입회하는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된 일이다. 이왕 수도자가 되기로 했으니 기쁘게 살아라. 그렇지만 만약 그 길이 재미가 없으면 바로 나와라. 우리 집 문은 너에게 항상 열려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쁨의 영성’은 신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고 차 신부는 말했다. ‘거기서 뼈를 묻어라’는 부모의 당부를 안고 비장하게 신학교 문에 들어서는 한국의 신학생과는 영성의 출발점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교황은 본인의 선택으로 기쁘게 살아야 하는 즐거운 의무를 감당하지만 ‘뼈를 묻어야 하는’ 신학생은 떨칠 수 없는 의무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차 신부는 자기 행복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예로 들면서 긍정의 화신이었다고 소개했다. 외부의 상황에 나의 기쁨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폭풍처럼 쏟아지는 악처의 잔소리에도 끄떡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무엇도 내 허락 없이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다’고 다짐한 거예요. 이걸 알기 쉽게 바꾸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행복하다’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파송사역을 마치고 돌아와 마귀를 쫓는 권능을 행사했다고 좋아하자 예수는 고개를 절래 흔든다. 그러면서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제자들을 다잡아 준다.

“진짜 기쁨은 이런 겁니다. 크리스천은 하느님이 거저 용서하고 생명책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이게 기쁜 거죠. 그래서 어떤 조건에서도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형제를 향한 사랑은 관상적이다”고 말했다고 차 신부는 전했다. 빈부귀천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임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바라볼 때 황홀경에 빠질 수 있다는 게 교황이 말하는 ‘기쁨의 영성’의 절정이라고 설명했다.

“자주, 오래, 진득하게 하는 기도가 좋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믿음을 갖고 해야 되요. 그 믿음을 키우려면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같은 믿음의 말, 긍정의 말을 수시로 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기도는 실용적인 기도라고 차 신부는 설명했다. 먹고 사느라 버거울 때, 유혹에 흔들릴 때, 하느님을 먼저 챙긴 후 자신의 소망을 청하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힘 있는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walkingwithj@gmail.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