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환자들 아픈 마음 어루만지고 마지막 가는 길 거두는 사람들

2014-05-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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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사마리탄 병원서 채플린 사역 봉사단체 ‘리스닝셰어 미션’

▶ 한인목회자들 5년째 사연 경청 치유 도와, 무연고자 장례식까지

환자들 아픈 마음 어루만지고 마지막 가는 길 거두는 사람들

리스닝셰어 미션 사역자인 알렌 김(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ㆍ김형구ㆍ폴 황 목사와 김혜경ㆍ황영희 사모가 함께 모였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 멀지 않은 굿사마리탄(Good Samaritan) 종합병원에는 한인 환자들도 적지 않다. 멀리 한국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육신의 고통이 심각하면 영혼까지 흔들린다. 그래서 마음을 달래고 북돋워주는 일이 중요한 치료의 과정이 된다.

선교봉사 단체인 ‘리스닝셰어 미션’(Listeningshare Mission)은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과 병원에서 생애를 마치고 영원한 나라로 떠나는 영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단체 이름 그대로 아프고 두려운 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나누는 게 그들의 몫이다.

지난 2009년부터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사역을 시작해 LA 카운티(LAC/USC) 종합병원에서도 병원 채플린으로 환자들을 섬기고 있다. 모두 보수가 전혀 없는 일이다. 시간은 물론 오히려 내 돈 들여가며 하는 일이다.


폴 황, 알렌 김, 김형구 목사는 병원 채플린으로서 환자들을 찾아 마음을 어루만지는 한인 목회자들이다. 굿사마리탄 병원은 이들의 헌신에 감동해 아예 별도로 사무실을 내줬다. 그리고 주일마다 병원 내 유선방송을 통해 한국어 예배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병실마다 설치된 TV에서는 주일 오전 이들이 인도하는 예배가 방송된다.

이들의 사역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우선 하나는 살아 있는 환자들의 ‘아픈 이야기’(Broken Story)를 경청하면서 함께 울고, 같이 웃으며 가슴의 엉클어진 한을 풀도록 돕는 일이다. 병원에서 위축된 마음을 풀고 병마와 싸울 용기를 재충전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사망자의 뒤처리 역시 이들의 손에 떨어진다. 돈도 없고, 영주권도 없고,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타향에서 생명을 마친 영혼의 마지막 길을 거둔다. 시신의 화장 경비를 지원하고 장례식도 집전해 준다. 무연고자의 경우 카운티 검시소와 연락도 이들이 맡는다.

폴 황 목사는 “병원 채플린의 사명은 개종보다 치유가 먼저”라고 강조했다. 환자의 종교가 무엇이든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스스로 어려움을 정리하고 극복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섣부른 충고보다 들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가슴 속 깊이 자리 잡은 상처를 털어놓은 뒤 건강회복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케이스가 많다”고 소개했다.

진통제도 효과가 없을 만큼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백인 환자가 과거 불륜사실을 털어놓고는 고통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고 황 목사는 전했다. 몸과 마음은 결코 따로 가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수도 없이 확인한다는 이야기다.

불치병 환자를 돌본 알렌 김 목사는 “봉제공장에서 오래 일한 히스패닉 여성이 늘 기도하며 지내다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던 게 기억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끝까지 대화를 거부하며 모형 비행기만 만들던 환자나 죽는 순간까지 야한 옷차림을 고집한 할머니까지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는 이제껏 살아온 인생의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더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김형구 목사는 “미국의 병원과 호스피스 시스템을 보면서 열악한 중국의 노인 케어 정책과 비교를 하게 된다”며 “앞으로 현재의 사역을 선교와 연결해 복음을 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나이가 노년과 중년을 아우르는 사역하기 좋은 나이란 점을 알게 됐다”고도 했다.

모두 60대 중반인 이들은 은퇴 이후 제2의 삶을 희생과 보람 가운데서 찾았다. 또 황영희 사모와 김혜경 사모도 40년 경력의 간호사(RN)로 사역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walkingwith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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