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심 양면

2013-05-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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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가면서

우리 사무실에 늘 빵을 사오는 손님이 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세금관련 서류를 가지고 온다. 올 때마다 잊지 않고 빵을 사오는 것도 대단한 정성이다. 탁자에 놓아둔 빵은 손님이나 직원이 출출할 때 맛나게 먹는다. K타운에는 맛나고 먹기도 편한 빵집이나 떡집이 많아서 가벼운 선물로 안성맞춤이다. 빈손으로 남의 집에 가지 않는 한국의 풍습이 몸에 배인 까닭이다.

아침인사로 “진지드셨어요?” 하고 어려서는 인사했다.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아침인사로 밥을 먹었는지 묻은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삼식이는 하루 세끼 밥을 집에서 먹는 은퇴한 남편을 말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Good Morning”하고 아침 인사한다. 기분 좋고 날씨 좋으면 그냥 “Good Morning”이다. 남녀노소가 그냥 “Good Morning” 하면 그만이다. 기껏 커피 했는지 묻는 경우는 있다. 지금은 냉장고마다 식재료가 넘쳐나니 냉동고에 옮겨서 얼리고 추가로 김치 냉장고까지 놓고 사는 집이 많아 졌다. 비만한 남녀는 부끄러운 시대가 됐다. 돈벌이 좋은 가정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여자는 살 빼고 남자는 보약을 먹는다. 날씬하고 멋진 외모가 Very Good!인 세상이다.


시대에 따라 아침인사도 바뀌었다. 먹는 밥에서 편안한 잠으로 바뀌었다. 안녕히 주무셨는지 묻는 것이다. 지난밤에 오랑캐의 침입 없이 비명횡사하지 않고 무사히 아침을 맞았으니 다행이라고 인사하는 것이다. 지난 서너 달 동안 북한의 전쟁협박이 나날이 심해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아침마다 한국이 밤새 안녕한지 먼저 알아보곤 했다. 잠자리가 좋아야 건강에도 좋고 심신의 피로가 풀린다. 매일 아침 만나는 운동하는 이들에게 밤새 안녕을 묻는다. 안녕하십니까?예로부터 오복의 첫째는 ‘무병장수’이다. 현대인의 장수비결은 음식, 운동, 그리고 의료검진이라고 한다. 사서삼경의 오복은 첫째가 ‘수’로 오래 사는 것 둘째는 ‘부’로 의식주가 풍족한 재산 셋째는 ‘강녕’으로 건강하고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돈 벌어 덕을 베풀고 그러다 편하게 죽는 것이다. 과식, 과음, 과욕으로 명줄을 재촉하는 것이 현대병이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 88세로 사망했다. 식료품점 집의 딸로 태어나 대영제국의 고질병을 개혁한 위대한 정치가이다. 평범한 Mrs. 대처로는 아픔이 많은 노후를 보냈다고 한다. 쌍둥이 아들과 딸의 엄마로, 정치하는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가정의 주부로서 한 인간의 삶 뒤안에는 우리와 똑같은 아픔과 시련이 있었다고 한다. 자식들에 대한 편애와 화해할 수 없는 아집으로 오복의 마지막 ‘고종명’은 없는 것 같다. 옷 위로 훈장과 명예가 가득차도 가슴 속에서 뭉개구름처럼 피어나는 행복이 더 귀중한 것 같다.

어린이날과 어머니날은 매년 5월에 같이 있다. 어머니날이면 길거리마다 꽃장사들이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식당에는 노모를 모시고 온 자녀들로 붐빈다. 크고 작은 불평으로 가득 찬 자녀도 자라서 아이의 부모가 된다. 어느 가정이라고 완벽한 가정은 없다. 물질만능주의와 속물 의식으로 가정은 멍들대로 멍들어 있다. 있으면 있어서 없으면 없어서 행복과 불행을 반복한다. 엄마와 사는 아이, 아빠가 지키는 안정감, 그리고 남편이 존재하는 가정이 없어진 깨어진 가족보다는 좋다. 적당히 속고 적당히 아파도 가족은 행복을 담는 최후의 그릇이다.

너무 많은 것을 소유했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베개를 하고 누워도 행복하다는 말이 이해된다. 채소만 먹으니 다이어트 걱정 없고 술을 아니 마시니 실수할 걱정도 없다. 무소유의 의미도 알 듯하다. 이제 일용할 양식에 감사할 줄도 알게 됐다. 꼭 물질이 마음을 앞서는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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