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 아침의 생각

2012-01-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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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일상, 깨달음

금년 새아침에는/ 희망이니 소원이니, 혹은 약속이니 결심이니/ 이런 말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지나놓고 보면, 나의 희망이란 대부분이 허영이었고/ 지키지 못한 결심 위에 다시 결심이 쌓여/ 내 지난 세월은 부끄럽고 무거웠습니다// 소원이란 또 얼마나 사치스러웠으며/ 약속은 또 얼마나 부질없었습니까/ 엎드려 드린 기도마저 얼마나 고집스러웠습니까// 이제는 완강한 내 어깨의 높이를 낮추고/ 감출수록 드러나던 나의 가난/ 진정한 뜨거움도 없이 함부로 써서 때묻고 색바랜 나의 사랑/ 여기서 모두 내려놓습니다// 나에게 다시 허락하시는 이 소중한 새해 아침/ 천만금의 보석보다 더 영롱한 첫 햇살 앞에서/ 다만 목이 메어서, 목이 메어서/ 무릎 굻은 마음,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가만히 입속으로 이 말씀 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제가 ‘새해 아침에’ 라는 제목으로 쓴 시입니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소원 한 가지쯤은 마음에 담거나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서 드리곤 합니다.

정초에 한국 뉴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해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추위를 무릅쓰고 어두운 새벽 바닷가나 산등성이에 모여 기다리고 있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정월 초하루의 해돋이라고 해서 평소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만은, 그렇게 사람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모여든 것은 새로운 시간의 해돋이라는 상징 앞에서 어떤 소원을 빌고 싶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새해 아침에 빌고 마음에 새겼던 그 요란한 소원이나 희망이나 결심들이 작심삼일, 미처 정월이 다 가기도 전에 벌써 뇌리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기억되지 않는 소망, 지키지 못할 약속, 사치스럽고 허영스러운 희망을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 기도드리곤 합니다.

제 생각에는 새해 아침에 드리는 소원이나 결심이나 약속 같은 것을 기도 드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현주소를 정직하게 살피는 일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무슨 일을 하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가? 내가 살아온 궤적이 내 생애 속에서 어떤 결과를 맺고 있는가? 나는 내 가족을 위해 진정 무엇을 했으며, 내 이웃과 사회에 어떤 뜻, 어떤 가치, 어떤 행동을 주고받았는지를 정직한 마음으로 더듬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기 존재의 무게를 분명하게 저울질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미래에 대한 올바른 목표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부여받은 삶의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진정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가 명확해질수록,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잠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 짧은 생애의 시간을 정직하게 수지계산을 맞추어 보지도 않은 채, 엄벙덤벙 또 부질없는 소원을 한해의 삶에 덧칠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생의 일몰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알게 됩니다.


그 짧은 시간을 얼마나 어리석게 낭비해 왔는가를! 그리고 짙은 후회감, 가슴 치는 아픔에 시달리게 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우리에게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가치는 감사의 마음과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한 생애 살고 가는 이 세상은 얼마나 감사한 한 곳인지!

내 가족, 내 이웃, 내 공동체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할 만한 이들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런 자기 확인과 세계 인식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새해 아침에 하나님께 드려야 할 소원과 결심을 제대로 가지게 되고 또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확인과 목표가 꼭 새해 아침에만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송 순 태 /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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