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물

2011-12-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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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 일상, 깨달음

북한 고아 돕기 심부름을 하다 보면 고마운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어느 교우는 지난 봄 산에 가서 고사리를 따서 팔아 4,000달러를 만드셨는데, 중국 조선족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2,000달러를 쓰고 나머지 2,000달러를 북한 고아들을 도우라고 보내주셨습니다.

산을 타면서 고사리 꺾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린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는 사연과 함께였습니다. 또 한 분은 병원에서 청소 일을 하시다가 주운 동전을 주인에게 돌려줄 길이 없어 빈 병에 모으기 시작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김치병에 가득 차게 되었답니다. 그분은 북한 고아를 위하여 써 달라고 그 동전을 병째 가지고 오셨습니다. 계산해 보니 97달러였는데 현금 3달러를 보태 100달러를 채워서 기탁해 주셨습니다.

다른 분은 여름 내내 색색의 털실로 목도리를 뜨개질해 100개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겨울 전에 고아들에게 보내기 위하여 한정된 시간에 목도리 100개를 만들자면 부지런히 뜨개질을 하셨을 것이고 연로하신 그 분은 어깨와 팔이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환하게 웃음 지으며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런 고마운 교우들을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말해 두고 싶은 것은 이분들이 사회적 명성이나 재산이나 학식이 많은 분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교우들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의 어려운 고아들을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실천에 옮긴 것 뿐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정성을 받아들 때마다 고마움의 눈물이 맺힙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사회의 지탄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주로 교회 지도자들의 허물 때문입니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가 영화로 나오면서 비판의 강도가 더 세지고 있습니다. 필자도 그 영화를 보면서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영화 내용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도가니’는 한국 사회의 그늘을 보여주는 동시에 교회 인사들의 모순된 모습을 많이 부각시켰습니다. 부정을 저지르는 분들은 대부분 교회 공동체에서 지위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미국의 한인 교회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겠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때도 상황은 같았습니다.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대부분 부패했습니다. 백성은 방황했고 신앙의 갈등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서야 할 곳을 확실히 하셨습니다. 재물이나 권력이나 자기 보존이 아니라 고통과 학대를 받는 사람들과 함께 서신 것입니다.

‘도가니’의 작가로서도 아니고, 예리한 비평자로서도 아니고, 용감한 고발자로서도 아니고, 예수께서는 오로지 고통 받는 시청각 장애자들과 함께 서셨습니다.

교회가 사회적인 지탄을 받으니까 창피하다, 괴롭다, 회개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나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변에 소외된 장애자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를 살피고 그 아이들을 위하여 고사리를 따고, 동전을 모으고, 목도리를 떠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 우리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상과 그의 행동과 그의 성품을 우리가 실천해야 할 길로 주셨다는 뜻입니다. 묵묵히 또 신실히 예수님을 따라 발걸음을 옮길 때 교회는 사회적 지탄에서 벗어나고 신자는 구원의 선물까지 받게 되는 게 아닐까요? 성탄의 계절 12월, 신의 성육화는 우리에게 삶의 성령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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