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나됨 안에서의 다양함으로

2011-10-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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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윤실 호루라기

1902년 121명의 한국인들이 하와이에 처음 이주한 이래 110년에 가까운 한인 이민역사는 3세, 4세까지 진행되는 단계에 있다. 세대별 분포는 이미 2세 이상 인구가 1세보다 6대4의 비율로 더 많아졌다고 한다. 이제 한국에서 이민 오는 사람도 과거만큼 많지 않은 상황임을 볼 때, 한인사회의 현재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미래를 냉정하게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이민 2세 청소년들이 중고교 시절 한인교회에 다니다가 대학생이 되면 90% 이상 한인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또 미국교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영적 방황을 많이 한다고 한다. 한인사회는 교회가 생활의 구심점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한인사회와 가정에서도 2세들이 떠나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세들이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문제는 삶의 방식 이해의 차이, 가치관 차이, 문화 차이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의 바탕에는 언어가 다름에서 오는 의사소통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첫째, 문제의 심각성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이 가족 간의 이별이다. 부모 자녀 간의 대화가 쉽지 않은 것이 이민사회의 현실이다. 이것은 이민 온 목적을 송두리째 상실할 만큼 심각한 문제다. 이민 1세대 부모들은 자녀들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일 때문에 큰 낭패를 느낀다. 자녀들 또한 자신의 근원과 기반을 잃는 어려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이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해야 한다. 문제를 문제로 깨닫는 데서부터 해결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많은 가정이 생업에 얽매여 이 문제를 고민할 틈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급한 일에 허덕이다가 중요한 일을 놓치면 인생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둘째는, 다양함과 하나 됨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이민사회는 다양하다. 언제 이민 왔느냐, 어떤 지역으로 왔느냐, 어떤 목적으로 왔느냐 등에 따라 같은 1세라도 삶의 내용과 질이 다르다. 자녀들 또한 어떤 연령대에 미국에 왔느냐에 따라 2세, 1.5세, 1.2세 등으로 갈라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만 사용하는 2세라도 대학생 이상이 될 때, 80% 이상이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인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미국인들로부터 ‘외국인’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경험한다. 결국 한민족 혈통이라는 공통 정체성을 바탕으로 각자 가진 장점을 다양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이 ‘하나 됨 안에서의 다양함’(unity in diversity)을 추구할 때, 한인사회는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채, 2세, 3세들을 통해서 미국사회를 변화시키는 역동적 민족이 될 것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주일예배의 첫 40분을 모든 세대, 모든 언어권이 함께 한다. 예배의 첫 순서를 온 가족이 함께 시작하고, 함께 드림으로써 가족의 개념을 매주 한 번씩 공유한다. 찬양은 이중언어 자막을 띄우고, 어린이 설교를 통해 어른들도 어린이들이 어떤 메시지를 듣는지를 알게 한다.

그러나 어린이 설교 후 영어권 메시지, 한국어권 메시지, 주일학교 등을 통해 각자의 ‘주체 언어’(heart language)로 말씀과 교육을 받도록 함으로써 ‘하나 됨 안에서의 다양성’을 조화시키려고 애쓴다.

그 결과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 심지어는 노년 등이 세대차를 많이 느끼지 못하는 가정 같은 교회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중언어로 준비하는 수고가 있어야 하고, 전체가 함께 모임으로 약간 소란하고 예배 중간에 서로 나눠지는 불편을 겪어야 하지만, 가족관계가 정말로 중요하고, 2세, 3세를 통해 미국사회에 한인이 갖고 있는 장점으로 공헌할 수 있다면 이 정도의 수고는 오히려 작은 것이 아닐까?


배현석 목사
<앤아버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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