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도와 진정한 회개

2011-07-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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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경 호 목사
보스톤 성령교회

기도는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습관이며 삶의 주춧돌을 놓는 경건의 모습이다.

그것은 한 번 몰아쳐 집중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쉬지 말고 기도할 것을 가르쳤다. 몰입성 기도가 한국 교회를 망친다. 엄청 잘못하고 한꺼번에 바람몰이 하듯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분풀이다. 기도는 일회성 잔치가 아니다. 기도는 위기 탈출의 방편이 아니다. 기도는 잘못을 은근슬쩍 지나가기 위한 피난처가 아니다.


한국에서 지난 6월 열린 ‘기도 한국’의 모습을 보면 반성할 점들이 너무 많다. 개교회 문제를 양심 있게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행사를 주최하는 모습이 근심스러웠다. 불신자들의 비웃음을 독차지하는 그들이 기도꾼인 것처럼 나섰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러웠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렇게 부르짖기 전에 먼저 교회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요란하게 떠드는 회개는 있지만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보이지 않는 것이 한국 교회의 고질병이다. 엄청난 헌금을 소비하면서 떠들썩하게 회개해야 하는가?

진리를 추구하며 정신적 리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들이 끊임없는 비리의 늪을 헤매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도를 고치고 사람을 바꾸지만 지능적인 비리는 교회를 늘 괴롭힌다. 괜찮은 사람 같지만 교인수가 증가하고 세력이 증폭될 때 자정능력을 상실해 버린다. 지속적인 부흥의 힘이 새롭게 일어나야 한다.

분열왕국 시대 유다 왕 중에 희한한 사람이 있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다. 연합군 이스라엘의 침략을 두려워한 나머지 불신의 방법을 동원한 대처방법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의미 있는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연합군을 대항하기 위해 앗시리아 왕에게 도움을 요청한 보상으로 성전의 금과 은을 예물로 보낸다. 이스라엘 연합군이 결코 예루살렘을 치지 못하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전해진다.

아하스는 단호하게 여호와의 명령을 거절해 버린다. 오히려 앗시리아 왕을 영접하러 다마스커스까지 가서 앗시리아 신들을 경배하는 단 모양을 본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겼다. 단순히 아부하기 위한 제스처였다. 앗시리아 왕들은 전쟁하면서 승리를 위한 담보로 이동 제단을 들고 다녔던 것이다. 우상의 제단을 예루살렘으로 옮겼을 뿐 아니라 성전 제단의 형태까지도 앗시리아 식으로 재배치해 버린다. 멋지게 장식된 제단 위에서 모세 율법에 규정된 제사법을 남김없이 시행한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멸시한 아하스 왕의 죄악을 꾸짖으며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을 쏟아낸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주옥같은 계획이 선지자의 입에서 거침없이 선포된다. 고급스럽고 값비싼 물품으로 제단을 장식할지라도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관심에서 떠나버렸다.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로 제사드릴지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향기를 외면하셨다.

앗시리아 신들과 혼합된 성전예배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현대교회의 모습과 닮았다. 성경이 ‘NO’라고 경고하더라도 대중이 ‘OK’ 하면 교회는 두 손 들어 환영한다. 이방 신들이 성전제사를 장악하듯 가식적인 기도와 예배가 교회를 채운다.

참 회개가 없는 기도의 물결이 온 나라를 뒤덮는다. 호화스러운 잔치와 잘 짜맞춘 치밀한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마음을 사로잡을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은 멀리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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