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일상, 깨달음 잠깜 멈춤은 축복입니다

2011-07-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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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처음 기브스를 하고 멈춰선 지 한 달째다.
청백팀 나눠 줄다리기를 한 것이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라서 소녀표 설레임을 안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줄을 당겼는데 우리팀이 이기는 바람에 내 앞줄에 섰던 청팀 모두가 내 몸 위로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순간적 방어본능으로 발을 디뎠는데 불이 번쩍 나는듯 오른쪽 발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다음날 병원에 가 보니 엄지검지 사이 중요한 신경이 나갔단다. 수술이 어려워 기브스를 했는데 운전도 못하는 상황이 되니, 집안 일과 교회 일 등 쉴 새 없기는 해도 평소에는 별 문제 없던 일들이 고난도 장애물 경기다. 휴 하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다행히 방학이라 아이들 여섯이 다 모였고, 모처럼 오신 친정 부모님도 부족한 자리를 메워 주신다.
예고 없이 멈춰서니 처음엔 답답해서 마음에 병이 날 지경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달려가느라 못보았던 것들이 너무 또렷하게 보인다. 이론으로 알았던 ‘스피드 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매일 온몸으로 느끼며 지금까지의 방향을 교정 중이다.
운동선수들에게도 ‘해프타임’은 너무도 중요하다. 최선을 다한 전반전의 점수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고, 짧은 해프타임 때 약점을 보완하고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는 통찰력 있는 작전이 세울 때 역전승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전력질주도 때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42.195Km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라면 작전부터 다르다. 처음에 앞선다고 최후 승리를 얻는 것이 아니다. 힘을 잘 분산해 몸과 마음을 조절하고 극복해 내는 사람만이 장거리를 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7킬로미터씩을 천천히 뛰는 것이 마라톤의 기본기라고 들었다. 1킬로미터를 뛰기도 어려운 주부들에겐 매일 7킬로미터는 꿈 그 자체다. 그런데 그 어렵다는 마라톤을 매년 완주하는 주부들이 주변에 상당수 있다는 사실에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한다.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완주할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신앙간증’ 못지 않게 감동적인 자신과의 싸움 이야기들을 들려 준다. 컨디션이 좋다고 빨리 뛰어도 안 된단다. 기분이 좋고, 잘 뛸 수 있는 시간일수록 더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는 절제의 능력, 그 멋진 지구력과 자기조절 능력이 결국 42.195킬로미터 완주라는 인간승리를 선물한다는 것이다.
다리를 다쳐 짧은 거리는 목발을 짚고, 교회나 넓은 장소에선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보니 맘대로 걷고 뛰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평생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요령이 없어 고생을 했는데 한 달이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간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장애우들의 심정들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한 달 발이 묶여도 이렇게 불편한데 평생 불편한 신체조건과 편견을 극복하며 살아야 하는 장애우들과 그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까?
일상을 멈추고 늘어난 기도시간만큼 그들을 품고 중보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되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사람이 미련해서 자기가 경험한 만큼만 깨닫고,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얼마 후면 기브스를 풀고 두 발로 서게 될텐데 그 미련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멈춤도 축복이고 달림도 축복이다. 내게 허락된 모든 것은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재료다. 남은 멈춤의 시간들이 설렘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이 감사, 감사뿐이다.

정 한 나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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