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꿈을 바꾸는 사람들

2011-06-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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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사님은 없는 살림에 아이들 셋을 키워보고 나서 저런 소리 했으면 좋겠어!” 라는 것이 설교를 들은 일반 신도들의 반응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목회자들의 설교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비아냥거리는 이야기다. 이민사회에 넘쳐나는 목사들은 별로 땀 흘려 일하지 않고 하늘의 소리를 전하는 사람들로 비쳐진다. 그러기에 이민자라는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신도들에게는 실천하기 어려운 요구들이 많다.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는 삶, 자녀들의 양육비, 등·하교 라이드 등에 매여 사는 우리 중 누군들 고상하게 하늘의 뜻을 실천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영성을 가로막고 기독교적 실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기준은 있는데 신도들의 편의를 위해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고민에 접한 목회자들 중 ‘앞서 가는’ 사람들은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한다. 꿈을 꾸라며, 긍정을 심어준다. 꿈꾸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기업체 신입사원 교육 강사와 같은 말을 복음이라고 왜곡한다. 지금 현실은 어렵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셨노라고, 그러니 열심히 살자고. 물론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사례 중심의 설교는 좋은 세일즈 실적을 거둔 이달의 판매왕의 ‘간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님을 믿게끔 모든 조건이 잘 완비된 목회자들이 삶의 현실을 외면한 채 선포하는 설교도 문제지만 자본주의적 성공을 복음의 결과로 치장하는 설교는 더 큰 문제다. 나 역시 일주일 동안 지친 영혼들에게 달콤한 소리를 전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만 적어도 이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는 것이 축복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바바라 에런라이크가 쓴 ‘긍정의 배신’은 오늘 사회에 만연한 긍정만능, 꿈 만능을 비판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긍정은 위기의 징후에 눈감게 만들어 금융위기를 비롯한 사회적 재앙에 대비하는 힘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긍정성 부족으로 돌림으로써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모든 상황에서 예가 된다는 성서의 증언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긍정이 아니라 어떠한 부정적인 현실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같은 꿈을 꾸어왔다. 큰 집에, 좋은 차에 자녀들의 좋은 대학 입학이라는 같은 꿈을 꾸어 왔고 그것에 성공한 일부의 이야기만 회자될 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뒤안길에 묻어버렸다. 경쟁사회에서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제한된 숫자인데 성공한 목사들이 외치는 긍정의 신학은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심어주는 진통제의 역할을 할 뿐이다.

누군가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누군가는 꿈을 빼앗기는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다. 이제는 모두 같은 꿈을 꾸지 말고 꿈을 바꿀 때가 되었다. 큰 집에 사는 꿈을 그만 꾸고 작은 집에서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쪽으로 우리의 꿈을 바꿀 때가 되었다. 성공의 꿈이 아니라 소박한 삶에서 모두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꿈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동료 목회자들에게 부탁한다. 힘들어 하는 신도들을 위로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지친 영혼들에게 긍정의 마음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제발 사람을 끌기 위해 세속적 지성들조차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구조에서 성공하는 것을 복이라고 말하지만 말자. 그것이 동종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김 기 대 목사
(평화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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