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체면치레

2011-06-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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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 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겻불’이란 쌀겨 태우는 불을 이르는 말입니다. 겻불은 연기가 많이 나고 불기운은 신통치 않습니다. 그러니 양반은 비록 추워도 그 매운 연기를 참고 겻불을 쬐지는 않는다는 말인데, 아니, 얼어 죽게 되었는데 곁에 불을 두고도 쬐지 않겠다니, 소가 들어도 웃을 일입니다. 비록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 속담 한 마디를 두고 보아도 우리나라 체면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양반 체면이 무엇이기에 얼어 죽어도 불을 쬐지 않겠단 말입니까?

체면이란 얼굴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 속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의도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므로 체면을 차리는 일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살펴보면 체면을 차리지 않는 민족은 없습니다. 중국인들도 체면 세우는 일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서구 사람들도 체면을 중요시하는 데는 동양사람 못지않습니다. 일일이 예를 들 필요가 없겠습니다.

문제는 그 체면 세우는 일이 얼마나 합리적인 것이냐에 있습니다. 수년 전에 우
리 미주 한인사회에서 잘 사시던 분이 갑자기 사업이 어려워지고 생계가 위협을 받자 부부가 아이들까지 함께 데리고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누구든 재산 들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또 가난이 무슨 죄도 아닌데, 좀 어려워졌다고 아이들까지 자살하게 한 것은 너무 옹색한 생각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체면이란 대개 이렇게 맹목적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잘못된 체면 차리기가 현재 남북한 사이도 가로막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 어느 면에서도 남한과 경제협력을 해야 합리적인데도 이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남한의 협력을 받을 만큼 받았는데, 요즘 와서 남한하고는 상종을 못하겠다는 식입니다. 반면에 중국과는 그다지 유익해 보이지 않는데도 경제협력 조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마치 경제협력을 할 나라가 중국 밖에는 없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돈 될만한 북한의 광물질 채굴권은 대부분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왜 우리 민족끼리는 주고받는 일은 외면하면서 손실을 보면서까지 중국에 매달려야 할까요?

남한은 어떻습니까?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한다는 이유로 북한이 그동안의 도발 문제를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사과를 받아내기 위하여 계속 형제의 목줄을 조이고 있는 것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형제가 굶주림 속에 있는데 세계가 다 아는 일을 가지고 사과만 요구하는 것도 옹색해 보입니다.

“체면이 밥 먹여 주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명분 때문에 실리를 놓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중국의 태도를 보면 이 말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핵에 대한 우려가 그들인들 없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유연하게 북한과의 거래를 트고 실리를 추구합니다. 핵은 핵이고, 장사는 장사이고, 정치는 정치라는 식입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은 북한과 남한을 저울질하고 있을 뿐이지 자국의 이해에 조금만 눈금이 기울면 금방 북한과 관계개선에 나설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를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라고 탓할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단순화시키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습니다. 아무리 복잡하게 분석하더라도 문제의 해결은 결국 단순한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언제까지 체면치례만 내세우고 민족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있을 것인지 참으로 답답한 마음입니다.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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