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대한 종교

2011-04-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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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말이 없이 저기 누워 있고/ 바다도 말이 없이 저기 철썩인다/ 원통한 소리 들어주는 귀 없고/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손 없다/ 친구야 내가 너를 안아줄게/ 울어라 내가 너를 안아줄게’

‘김창완 밴드’의 신곡 ‘Why on Earth’(도대체 왜)의 가사이다. 중견가수 김창완은 일본인 지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가사를 썼고, 바로 곡을 붙여 지진피해자들을 위한 자선공연을 열었다고 한다.

이 노래는 인터넷을 통해 전 일본에 알려졌는데, 지진과 쓰나미의 직접 피해지역인 센다이는 물론, 일본 각지에서 트위터를 통해 감사의 메시지가 쇄도했다고 한다. 한국인 한 사람이 참되고 애틋한 정을 담아 보낸 치유의 노래가 비탄에 잠긴 일본인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준 것이다.


일본의 인기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54)는 올해로 26년째 한국을 일본에 소개해 온 ‘한류 알리미’다. 그녀는 한류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한국은 정이 많은 문화예요. 내가 울고 있으면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이 한국인이죠. 일본인이 감명 받는 것은 한국인의 정인 것 같아요” 그렇지, 우리는 자고로 사람 맛이 나는 그러한 민족이다.

그리고 오래전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가 방한하여 경주 지방을 관광하던 중, 어느 농부가 볏단 실은 소달구지를 끌면서 지게에 볏단을 지고 가는 모습에 감탄했다는 일화가 있다. “농부도 지게도 달구지에 오르면 될 텐데, 소의 짐을 덜어주려는 저 마음을 내가 한국에서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지. 우리는 고래로 사람다운 그러한 민족이다. 깊고 진득한 정과 배려라는 천성을 지닌 ‘사람’들이지.

그럼에도 가끔은 지구촌의 가공할 재난과 억장 무너지는 슬픔을 두고 연민과 동정에 앞서, 늦을세라 우상숭배니 마귀니 신의 경고니, 이미 낡아 화석화된 말씀으로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어른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같은 통제 불능의 허언은 노쇠라는 억울한 한계가 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탓이거나, 그로해서 부려본 몽니로서 애처로운 ‘노이즈 마케팅’일지도 모를 터. ‘쯧쯧, 또 한 말씀 허셨네’ 하거나 ‘허허, 그 참 와전됐것제. 아닌감’ 하고 털면 될 일이다. 그래도 그럴 때면 참으로 ‘어른’이시며 세련된 ‘바보 할배’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한편, 거대한 쓰나미가 몰고 온 국가적 재앙을 흡수하고 극복하는 일본인들의 초인적인 자제와 절제에, 세계는 경탄과 함께 문화적 충격을 받은 바 있다.
그들은 절규하지 않았고 통곡하지도 않았다. 절규와 통곡은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 동요와 공포, 혼란을 야기하고 증폭시키기에, 그들은 속울음 울며 마음의 평형을 유지하려 애썼다. 따라서 있을 법한 약탈도 새치기 편법도 이기적 아귀다툼도 없었다. 그들의 집단적 질서의식은 경이로웠다. 그것의 밑뿌리 역시 배려이다. 비록 강요된 배려문화라 폄하할지라도.

아무튼 사람이 느끼는 따뜻한 감정을 정이라 한다. 정의 발현이 배려이다. 배려는 남을 보살피고 관심을 가지고 헤아리는 마음이며, 그것의 적극적 표현을 자비라고 한다.

배려는 ‘세련’된 삶의 시작이며 선의 근원이고 미덕이다. 그러기에 차라리, 더 차라리 ‘세상에 위대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배려’라고도 하는 것이다.


박재목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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