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난현장에는 “영구 없다”

2011-04-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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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감독의 영화 ‘The Last Godfather’의 북미 개봉이 최근 인터넷의 핫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이 이슈는 잘 알려진 한 문화평론가의 트위터 독설로 불거졌습니다. 그는 “북미 대개봉이라는 거창한 문구를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겨우 50여개 극장, 그것도 한인 밀집지역에서만 지난 4월1일 개봉되었다”며 “이는 단지 지난 1월 국내 개봉 때 관객동원 전략으로 외쳤던 ‘곧 미국 전역 개봉’을 확인시키기 위한 알리바이용으로, 거의 대국민 사기극 수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미국 개봉에 별 관심도 없었고, 그렇기에 그의 지적에 함께 흥분할 이유도 딱히 없는 나였지만, ‘달랑 50여개 극장 개봉이 북미 전역 대개봉이라는 문구로 과대포장’된 사실에는 “정말?”이라고 혼자 되물으며 허탈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며칠 전 마침, 집 근처 한인마트에 뿌려졌던 그 영화의 홍보전단을 접했었고, 큰 글씨로 적혀 있던 그 문구를 읽고는 “거 참 대단하군” 하는 찬사를 보냈었기 때문입니다. 그 문구가 주는 어감과 할리웃 출신 출연배우들의 면면들로 인해, 전단을 본 누구라도 나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고, 만일 평론가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 전역 수천개 극장에 걸려 있을 그 영화 포스터를 상상하며, 제작진에 찬사를 보냈을 것입니다. 실상은 달랑 50여개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데 말이지요. 이렇게 볼 때 이번 일은 ‘대국민 사기극’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저의가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런 유사한 시도가 생명구호를 논하는 현장에서도 자주 목격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자연재난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만의 고통이 아닌, 지구촌 주민 모두가 함께하는 나눔의 장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입니다. 고통 받는 피해자들을 보면서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마다 소위 전문가를 자처하는 단체, 기관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와 피해현장의 참혹한 사진들을 내걸고 후원금을 모읍니다. 이미 그들을 돕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북미 전역 대개봉’이 달랑 ‘50여 극장 개봉’에 지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마음까지 담아 보냅니다.


물론 미 영화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던 올드보이, 아저씨, 마더 등 훌륭한 한국 영화들이 있었던 것처럼,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훌륭한 활동을 하는 기관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기관들을 잘 식별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영구’의 ‘북미 대개봉’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라는 점입니다.

지난 3월 중순 전대미문의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했습니다. 한국의 한 인터넷 포털에서 크고 작은 약 20개 기관들이 즉시 모금을 시작했고 현재 각 모금함마다 작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일억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번 피해자들을 위해 일본 내에서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이 20여년 월드비전 현장경험으로 다져진 내 눈에 거의 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난이 터지면 직접적인 활동은 천천히 생각하고, 사진 몇 장 구해서 일단 모금부터 하고 보는 이상한 습성을 지닌 단체들과 그곳에 몸담고 계신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자! 이제 모금한 돈은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이미 구호활동이 끝났으니, 알아서 좋은 일에 쓰겠다는 상투적인 방법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시겠습니까? 샤핑몰에서는 불량상품 판매 때 환불이라는 것이 있는데, 혹시 생각해 보셨는지요?


박준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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