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2011-03-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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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의 행복

솔직히 제 눈에서 눈물이 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난히 민족적 자긍심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그들은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을 제공한 흉악범이요, 지형적으로 우리의 영토를 탐내는 파렴치한 도적이요, 경제적으로는 따라잡아 궁극적으로는 무너뜨려야 할 ‘쪽발이’일 뿐이었습니다.

그들과 축구 경기를 할 때는 목이 터져나가도록 악을 쓰며 승리를 외치는 응원을 하고, 그들에게 이기는 것이 월드컵 우승보다 더 기쁘고, 만일 지기라도 한다면 며칠 동안 그 충격 때문에 패닉상태에 빠질 정도입니다. 그들은 도대체가 저와 가까울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눈에서 나도 모르게 참담한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그들 때문에 말입니다. 한국 월드비전과의 회의로 한국에 출장 와 있는 동안 일본에 밀어닥친 지진과 해일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무심코 틀어 놓은 TV 화면을 통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는 엄청난 재난을 목격하면서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거대한 해일이 방파제를 넘실거리더니 급기야 순식간에 한 마을을 집어 삼키는 장면은 마치 영화 속의 CG효과를 보는 듯했습니다. 물길에 따라 장난감처럼 떠다니는 집, 자동차, 그리고 주민들의 통곡소리… .

지진의 공포가 지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슬픔이 떠돌았습니다. 이동통신도 두절되어 버린 상황에서 딸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공중전화 박스를 찾은 할머니는 망가진 공중전화를 들고는 그만 참았던 절망의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연락이 두절된 가족들의 흔적만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 쓰레기더미로 변한 마을을 돌아다니는 주민들의 얼굴에서는 이제 눈물도 말라버렸습니다. 사라진 4만여명의 내 가족, 친척, 이웃들…. 어제까지 함께 웃고 울던 그들이 오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찌 그들의 슬픔을 가늠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더 이상 흉악범도 아니요, 도적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고통 속에 통곡하는 나의 이웃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절망이 내 가슴을 적십니다. 그들의 망연함이 내 가슴 속에 연민으로 번집니다.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진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도움입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가, 멀지만 가까운 나라가 되어야하는 순간입니다. 종교가 무슨 상관이며, 정치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과거는 무엇이며 현재는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갑시다. 그냥 아무 조건 없이 그들에게 다가가 사라진 가족이 되어 줍시다. 친척이 되어주고 이웃이 되어 줍시다. 그래서 그들이 한시라도 빨리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합시다. 생각하고 잴 시간이 없습니다. 바로 지금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빨리 얼마 전처럼 축구경기장에서 악다구니로 자신들의 승리를 외치며, 나의 승부욕과 경쟁심을 자극하던 자신들의 모습을 되찾기를 고대합니다. 그때는 아마 그 악다구니가 우리에게 유쾌하고도 즐거운 소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박준서(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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