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매화야! 매화야!

2011-03-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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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속의 부처

봄이 매화를 부르는가. 매화가 봄을 부르는가. 아직은 바람이 알싸한 2월 하순이면, 한반도의 남녘에서는 벌써, 안달 난 매화나무의 꽃망울들이 앙상한 가지위에 쌓인 눈을 온 몸으로 녹이며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다. 매화가 드러내는 줄기찬 생명력과 열정, 그 강건한 의지에 숙연해진다.

3월이 한창이면, 지리산 저쪽 덜미와 골짜기의 잔설들은 자분대는 봄짓에 완강하다가 결국, 꽃샘바람이 되어 꼬잘스레 ‘꼬장’을 부릴 터이지만, 섬진강 기슭을 따라 끝없이 늘어선 매화나무는 그에 아랑곳없이 화르르 불타오른다. 송이송이 매화 꽃잎들이 따사한 봄바람에 살랑이고 강섶은 온통 매화 향에 젖는데, 그 향내에 취해 천지가 가물가물 자지러진다. 환장할 봄인 것이다. 머잖아 안개구름처럼 한껏 피어오른 꽃잎들이 세찬 바람이 지날 때면 숨 막히게 휘몰아치고, 달빛 내려 반짝이는 은물결 위로 점점이 서럽게 스러지면, 이제는 벚꽃이 난리를 치겠지. 고국의 봄은 그렇게 시작되고 무르익어간다.

겨우 5~6년생 쯤 되었을라나. 앞뜰에 나란하게 서있는 서너 그루 매화나무에서는, 일찌감치 참새 혀만큼씩 한 새순이 돋나 싶더니, 어느새 연분홍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드나들며 보고 또 보고 돌아서다 또 보고는 한다. 어쩌다 달빛 환한 맑은 밤이면 부러 그 언저리를 맴돈다. 월매(月梅)라면야 순천 선암사의 홍매를 빼놓을 수가 없겠거니. 하늘 가득한 보름달에 안긴 고목나무 가지 위의 홍매와 실바람에 묻어오는 아뜩한 향내는 한 폭 가슴 벅찬 절품이다.

섬진강의 그 몽환적인 장관, 그리고 선암사의 황홀지경과 견주기엔 턱도 없지만 그래도 앞뜰의 매화가 나름 운치가 있어 달 아래 매화와 노닌 앞사람들의 풍류를 훔치고는 한다. ‘뜨락을 거닐자니 달이 사람 따라 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차례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 옷깃에 향내 머물고 그림자 몸에 가득해라’(퇴계 이황). 달빛에 서린 매화가 드러내는 그 고결한 자태와 그윽하게 풍기는 암향은 특별하여 감당하기 힘든 고혹을 느끼게 한다.


매월상조(梅月相照)라는 말은 낭만적인 서정을 담고 있다. 그 말은 바로, 매화가 그토록 청초하고 처연하게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까닭은 달빛에 물든 탓이며, 달이 그토록 고아하고 애잔한 것은 매화가 보내는 향기에 취한 탓임을 암시한다. 선가에서는 ‘연기’의 의미를 시적으로 표현할 때 흔히 매월상조라는 말을 예로 든다. 이것과 저것, 나와 너는 무관하지 않다는 상관관계를 연기라고 한다. 우주는 단일한 유기적 생명체이며 나는 우주라는 거대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세포인 것이다. 따라서 세상은 ‘함께’임을 눈치 챈 ‘사람스런’ 사람은 뿌득뿌득 나를 고집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나라는 대기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가 죽어야 보이는 것이기에, 뼈를 에는 혹한을 죽기로 이겨낸 매화의 장한 결기는 그 자태가 주는 고혹감과 달리 매화의 진면목으로써, 죽어도
‘나’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 중국 당나라 때 선풍을 휘날린 황벽선사의 농익은 말씀이다. ‘…/ 차가움이 한 번 뼈 속을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코를 치는 매향을 얻을 수 있으리오/ 나뭇가지에 매달리는 것 귀한 일 아니니/ 천길 벼랑에 매달린 손을 놓아야 대장부라 하리.’

허나 아득하다. 그러니, 매화야! 매화야! 어쩌란 말이냐.


박 재 욱(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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