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만강 얼음 위의 죽음

2011-02-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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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조선조 500년 마지막 임금 고종 초기, 이사벨라 비숍이라는 영국인 여성 지리학자가 우리나라와 주변국들을 답사하였습니다. 그가 쓴 ‘조선과 그 이웃나라’라는 기록에 보면 당시 황해도와 평안도에는 길바닥에 아사자의 시체가 즐비했다고 합니다. 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그 지역 사람들은 대여섯 살 난 여자 아이들을 고작 쌀 한 말 값에 중국 뱃사람들에게 팔았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황해도와 평안도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비숍 여사의 발길이 미치지 못했을 뿐, 농토가 더 빈약한 함경도지역은 더 혹독한 굶주림이 휩쓸고 있었을 것입니다.

춘궁기 때마다 백성들이 굶어 죽어나갔는데 기막히게도 조선왕조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누구는 문신이 무신을 누르고 선비정치로 조선 500년을 지탱한 것은 세계사에 유례 없는 일이었다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것입니까? 조정은 당쟁으로 날을 새고, 백성은 가렴주구의 학정 아래 굶어죽기를 반복하였다면, 우리는 이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어떤 국가, 어떤 정체든 다수의 백성이 최소한의 양식을 얻지 못해서 계속 아사한다면, 어찌 그것이 떳떳한 나라일 수 있겠습니까?

최근에 BBC 인터넷판은 북한소식 동영상에서 두만강 얼음 속에 죽어 있는 북한 여성의 사진을 여과없이 보도했습니다. 기자는 기자답게 사실을 보도했겠지만 한국인들으로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고는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사진이었습니다. 함경도에서는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못지않게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형편이 나은 평양에서도 1kg에 1,500원하던 쌀값이 한 달 새 3,200원으로 치솟았다는 소식입니다. 금강산 관광이 허용되던 시절 북한사람의 평균 월급이 최저 200원에서 최고 500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북한의 월급이 올라서 1,000원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1kg의 쌀값 3,200원은 가히 충격적이라 하겠습니다.


평양의 쌀값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북한은 돈을 주고도 양식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집도 가족도 없이 떠도는 속칭 ‘꽃제비’라는 수많은 아동들이 북·중 국경지대에서 음식 쓰레기를 뒤적이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배고픔을 보다 못한 북한 아녀자들이 양식값을 벌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가 중국인들에게 자신을 성노리개로 내주고 있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일입니다. 두만강 얼음 속의 여성도 어쩌면 그 과정에서 쓰러진 한스러운 주검이었을 것입니다.

역사의 앞뒤를 살펴보면 북녘의 동족들은 조선조 때부터 굶주려 왔다고 보겠습니다. 단순히 농토가 모자랐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들의 무능이 그들을 굶주림으로 내몰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지나간 조선조 얘기는 차치하고 지금 우리시대의 이 민족적 비극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북한 당국자들은 왜 그렇게 오래 인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리고 남한의 지도자들은 이 비극을 어떻게 보고 있단 말입니까? 최근 북한이 우리 군함을 격침시키고 우리 수역의 섬에 포격을 가해 많은 죽음이 있었고 그런 만행에 우리 국민들이 주먹을 앙쥐고 응징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90년대에 200만이 굶어 죽었고, 지금도 그에 못지않은 주민이 굶어죽고 있다면, 그것은 차원이 다른 더 절실한 민족적 비극이고 고통이라 하겠습니다. 해외에 있건, 중국에 있건, 남한에 있건, 북한에 있건, 우리 속에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 동족이 겪고 있는 이 고통을 결코 외면할 수 없습니다.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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