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유의 함성이 공명현상을 일으킬 때…

2011-02-1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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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금 ‘레이건 앓이’를 하고 있다.” 1911년 2월6일 생이니까 2011년 2월6일이 탄생 100주년 날이다.

한 때는 무식한 할리우드 출신의 매파 대통령 정도로 치부됐었다. 그러나 사후 7년, 그리고 탄생 1백주년을 맞아 온갖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공화당의 루즈벨트’ ‘위대한 소통자’ 등등. 그리고 그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전 미국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친다. 김일성 출생 100주년이다. 1912년 4월15일 생이니까 2012년 4월15일이 그의 출생 100주년이 된다. 북한은 그러나 이미 수년 전부터 그 날을 꽤나 요란히 선전해왔다.


히틀러냐, 스탈린이냐. 독일의 역사학계를 한동안 뒤흔들던 논쟁이다. 그 논쟁의 핵심 사안은 은 히틀러로 대변되는 파시즘과 스탈린으로 상징되는 공산주의, 이 두 체제가 지닌 폭력적 본질로, 어느 체제가 더 사악한가에 초점이 맞추어졌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출간된 유명한 학술기록 보고서가 1997년에 간행된 ‘공산주의 흑서(黑書)’다.

전 세계의 공산정권들은 인류학살 범죄를 이념적, 정치적으로 정당화하며 체계적으로 자행해왔다. 이렇게 저지른 공산 정권들의 인류학살 규모는 한 마디로 악마적 규모라는 게 공산주의 흑서가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구소련에서 2천만여명, 모택동 치하 중국에서 6천5백만여 명 등 공산주의 치하에서 학살된 사람은 1억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치의 범죄조차 규모면에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여기서 따르는 부차적 논란은 공산주의가 저지른 잔혹상을 발표함으로써 혹시 나치의 만행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파시즘과 공산주의 중 어느 쪽이 더 사악한 체제인가가 또 뒤따른 논란이었다.

관련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는 최근의 저작은 ‘모택동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과 ‘유혈의 땅(Bloodlands)’이다. 프랭크 디쾨터가 펴낸 ‘모택동의 대기근’은 50년대 대약진 운동 시 4천500만여 명이 기아로 숨진 공산주의 중국 역사의 치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티모시 스나이더가 저자인 ‘유혈의 땅’은 히틀러와 스탈린이 저지른 대학살을 동시에 다뤘다.

두 책의 내용 모두 끔찍하기 짝이 없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인육(人肉)을 먹을 정도에 이른 대기근의 참상이다. “주리다 주리지 못해 어린이들이 만두를 훔치다 맞아 죽는다. 그 가족은 계급의 적으로 몰린다. 병든 자들은 길에 내버려진다. 배고픔에 못 이겨 사람들은 시체를 파내 먹는다. 인육이 암시장에서 거래 된다….” ‘모택동의 대기근’이 전하는 내용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스나이더가 전한 30년대 우크라이나 기근 시의 삽화다.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었다. 이런 사례가 2천여 건이나 보고됐다는 거다. 더 끔찍한 내용은 고아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배가 고픈 어린이들이 저희들끼리 잡아먹으려 들었던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무엇이 이런 캐너벌리즘의 참상을 불러왔나. 공산주의체제가 기아를 무기로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수천만의 아사자를 낸 중국과 소련의 대기근은 결코 자연재해가 아닌 의도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이뤄진 인류 학살이라는 게 그 고발 내용이다.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한 번에 수만 명을 학살한 범죄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굶겨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참상을 연출시킨 범죄, 어느 쪽이 더 사악한가 하는 질문이다.

둘 다 용서할 수 없는 범죄로, 악 그 자체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게 한, 그러니까 인위적 대기근이 불러온 범죄는 영적 고문이다. 인간의 영혼 그 자체를 말살시키는 범죄다. 공산주의 잔혹성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서 찾아진다는 것이 저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포인트다.

그 잔혹사가 오늘날 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곳이 북한이다. 맞아죽고, 고문당해 죽은 사람이 수백만이다. 사람을 굶겨 죽이는 ‘체제의 재앙’ 희생자 또한 수백만이다. 굶주림에 인성이 마비된 부모가 자식의 시체를 인육으로 팔아먹는다. 부모가 굶어죽었다는 소식에 군 간부가 자살을 한다. 그 와중에서도 권력집단은 주지육림에 빠져 있다. 간헐적으로 전해지는 북한 발 뉴스들은 그 ‘체재의 재앙’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란 사실을 알리고 있다.

왜 김일성 출생 100주년 선전에 그토록 광분하고 있나. 악이 쌓일 대로 쌓였다. 그 결과 체제에 균열정도가 아닌 큰 구멍이 생겼다.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그래서 더 악을 써가며 대대손손 그 잔혹한 체제를 이어나가겠다는.

30년 아성의 무바라크 체제가 마침내 주저앉았다. 좀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던 견고한 진이 독재타도를 외치는 피플 파워 앞에 결국 훼파되고 만 것이다. 그 민주화의 동력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몰고 올까.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개 짓이 지구 반대편 북경에 토네이도를 가져온다.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김일성 출생 100주년은 바로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저 육중한 피라미드를 무너뜨린 자유의 함성이 북한 땅에서 공명현상을 일으켜 김일성 동상이 무너지는 그런 변화 말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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