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발성 위기(Polycrisis)의 시대’- 2020년대 들어 자주 들려온 말이다.
그 발단은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침공으로 보인다. 그 때가 2022년 2월 24일이다. 2023년 10월 7일에는 하마스의 기습적 테러공격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전쟁의 불길은 계속 번지면서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이어졌다.
아프리카 사헬지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쿠데타가 발생하고 수단 내전은 날로 악화됐다. 대만해협에서, 또 남중국해에서도 긴장은 계속 고조되어 왔다. 이와 함께 그 마각을 드러낸 것은 Crinks(중-러-이란-북한)로 불리는 새로운 ‘악의 축’이다. 이 세력들이 제철 만난 듯 국제질서 파괴에 나서고 있다. ‘다발성위기가 뉴 노멀’이 된 것이다.
그리고 맞이한 2026년이다. 새해는 그러면 어떤 해가 될까. 보다 본격적인 국제적 무질서 시대를 여는 그런 한해가 될까. 아니면 뭔가 결정적 굴곡 점을 맞이하는 해가 될까.
“이란이 평화시위대에 발포해 폭력적으로 살해할 경우 미국은 그들을 구출하러 나설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준비된 상태이며 출동할 채비가 돼 있다.” 새해 들어서도 계속 번져가기만 하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던진 경고다.
시위가 제일 먼저 발생한 곳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유서 깊은 그랜드 바자다. 지난 12월 28일 첫 시위가 발생한 이후 해가 바뀌면서도 계속 확산, 이스파한, 시라즈 등 주요 도시로 번져나가면서 사망자가 속출하자 트럼프는 이란당국에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이다.
그날이 1월 2일이다. 같은 날 밤 10시 46분. 트럼프는 비밀리에 한 주요 군사작전 수행을 명령했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압송을 위한 ‘절대적 결의’(Absolute Resolve)작전이다.
작전은 마두로가 중국특사를 접견한지 불과 4시간 후, 다시 말해 중국특사 일행이 카라카스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전격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다음 날인 3일 새벽 4시 20분 트럼프는 ‘작전성공, 마두로와 그의 부인 체포 압송’ 등의 내용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렸다. 같은 날 오전 11시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은 평화적 권력이양이 이루어질 때까지 베네수엘라를 통치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약 카르텔과 유착된 친중노선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제에 대한 레짐 체인지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새삼 한 가지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트럼프는 이란 소요사태에 개입할 의사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 경고 발언이 나온 날은 2일로 바로 마두로 체포 작전이 전개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절대적 결의’(Absolute Resolve)작전을 은폐하기 위한 성동격서(聲東擊西)격 발언이 아니었나 하는 게 일각에서의 지적이다.
회교 시아파 신정체제 이란에서는 2000년 대 들어 이미 세 차례 전국적인 시위사태가 발생했었다. 대통령선거 부정의혹과 관련된 2009년 시위, 경제난으로 촉발된 2017~2018 시위, 그리고 “여성, 생명, 자유”를 슬로건으로 내 건 2022년의 ‘히잡’시위다.
수백만이 시위에 나섰고 2022년 시위 때는 보안군의 발포로 수 백 명이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시위는 용두사미 격으로 끝났다. 때문에 제기되는 게 이번 시위 역시 그런 식으로 끝나고 트럼프의 경고발언 역시 정치적 수사로 끝날 것이란 비관론이다.
‘이번에는 뭔가가 다르다.’ 도이체 밸레의 진단이다.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 상인들이 먼저 시위에 나선 것은 하나의 역사적 전환 같은 사태라는 지적과 함께 이 같은 진단을 내린 것이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랜드 바자의 상인들은 전형적인 체제옹호세력으로 2000년대 시위에 한 번도 가담 한 적이 없다.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회교혁명 때에만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 그런 그들이 이번 시위의 주동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시위의 성격이 달라졌다. 과거의 시위대는 집권세력의 개혁을 요구했었다. 오늘날의 시위 세력은 회교 시아파 신정체제 그 자체를 불신한다. 아예 폐기처분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이란이 맞이한 심각한 물 위기, 그리고 트럼프 워싱턴의 움직임은 신정체제 붕괴의 주요 변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언허드(UnHerd)지의 지적이다.
트럼프의 발언을 단순히 정치적 수사로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체제가 흔들릴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 ‘한 밤의 해머’작전에 따른 벙커 버스터 투하가 그것이다. 그 트럼프가 시위대 지지를 공언하고 나섰다. 그 발언에 민주주의지향 시위 세력은 크게 고무돼 있다. 반대로 회교집권세력은 위축돼 있다는 것.
무엇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제의 레짐 체인지를 불러왔나. 마약도 마약이지만 베네수엘라가 중국의 라틴 아메리카지역에서의 세력 확산 교두보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란도 마찬가지로 중국의 중동 진출의 주요 교두보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 이란이 경제난에, 회교신정체제의 철저한 무능과 부패의 결과인 심각한 물 부족에서 촉발된 대대적 반정부시위로 휘청거리고 있다. 그런 마당에 워싱턴은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까.
2026년 벽두에 베네수엘라와 이란에서 거의 동시적으로 날라든 소식들. Crinks 세력이 크게 꺾이는 그런 해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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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